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는 일기 이외에도 잡문 형태의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갑오년 11월 28일 이후 기록 중에는 중국 명초(明初)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에서 인용한 여러 구절들이 있다. 이는 필자가 밝혀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정확한 출처를 전혀 모르고 그저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 중에 특히 “난
고전번역에서 초서체로 된 고문헌을 해독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자칫 글자형태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오판할 수 있으므로, 항상 용례와 전후의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한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고전해독에 관건인 문리력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문팔초이(文八草二)”인데, 이는 초서 글씨 형태보다는 문리력에 더 비중을 둔다는 의미이다. 마치 암호문과도 같
이순신은 전쟁 중 진영에 있을 때 항상 혼자 사색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였다. 그래서 《난중일기》에는 “혼자 앉아 있었다[獨坐]”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항상 인격수양하는 자세로 생활한 것인데, 그가 추구한 것은 일상에서는 인륜의 도리이고,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전략이었다. 일찍이 병서(兵書)를 탐독하여 전쟁 중에는 교훈이 되는 내용들을 일기에 옮겨
《난중일기》1597년 5월 21일자에 “죽을죄도 아닌데 누차 형장을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물건을 바치고서야 석방 되었다.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정한다. 이것이 이른 바 ‘백전(百錢)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린다[一陌金餞便返魂].’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관아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민심이 천심이라 했듯이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위정자는 무엇보다 민생안정에 힘써야 한다. 백성의 뜻을 거스르고서는 나라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정을 잘 살피고 선정을 베풀기 위해서는 항상 인간사에 기준이 되는 올바른 도리를 따라야 한다. 중국 주초(周初)의 정치가 강태공은 “떳떳한 도리를 따라 보살피면 백성이 편안해진다[因其常而視之, 則民安].
주변인과의 긴밀한 협력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건이 된다. 공동의 협력에서 나온 힘은 한 개인이 주도하는 것보다 몇 배의 추진력이 있다. 때문에 공동체 결속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로써 의리를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가 감동하여 더욱 협조할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뒤로 한 채 항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 결점을 보완하여 노
성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놓이게 되면 많은 이들이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침착하게 사세를 관망하며 결사적인 자세로 노력하면 최악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실패한 원인을 진단하고 주어진 기회와 상황을 잘 이용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죽기를 각오한 자세로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때 반드시 목적을 이룰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이 7년간의 전쟁 중에 직접 체험한 사실들을 기록한 진중일기이다. 친필 초고본을 보면 급박한 전쟁을 치룬 해일수록 필기상태가 심하게 흘려져 있다. 특히 《임진일기》와 《계사일기》, 《정유일기》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큰 전쟁이 일어났던 해에 작성된 일기는 분량이 일정하지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이것은 인격수양자가 도덕을 실천하는데 있어 중요한 일이며,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풍속을 바로 잡는데 항상 귀감이 되는 일이다. 진정한 덕이란, 인간 사랑의 정신과 배려심에서 시작되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선(善)을 권장하는 데는 반
이순신이 전란 중에 주로 사용한 서체가 초서(草書, 한자를 흘려 쓴 글씨)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물론, 문서류 역시 초서로 작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일반 관원들이 백성의 청원서를 받고 답한 제음(題音)을 작성할 때도 주로 초서체를 사용했다. 초서는 한 번에 필획을 이어 쓰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이 알아보기는 어려워도 작성하는데 빠
어떠한 일이든지 중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항상 어려운 고비가 따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다른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각오로 노력해도 더욱 어려운 시련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안녕을 뒤로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러한 부단한 노력으로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 나갈 때 끝내
유능한 인재들의 역할이 국가의 초석이 된다. 국가가 어려운 위기에 놓였을 때는 그들이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의 기회를 맞았을 때는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도약의 발판을 이룰 것이다. 국가의 흥망도 인재들의 역할에 달려있다. 따라서 국가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인재들을 양성해야 한다. 인재들의 힘이 결국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