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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의

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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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난중일기 발굴] 오독의 문제를 고증하다공(共)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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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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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에서 초서체로 된 고문헌을 해독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글자형태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오판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용례와 전후의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초서해독의 지침인 “문팔초이(文八草二)”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는 글씨 형태보다는 문리력에 더 비중을 둔다는 뜻이다. 요즘은 이러한 문리력이 없는 일반인들도 고전관련 웹 DB정보를 통해 쉽게 고전을 번역한다고 하는데 이에 따른 문제도 적지 않다.

마치 암호와도 같은 초서체 글씨를 정확히 해독하려면 우선 관용적으로 쓰이는 한문문법과 전고(典故), 용례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옛날에는 한문문법서가 없었기 때문에 다독의 방법을 권장했지만, 요즘은 한문문법서를 많이 활용하는 추세다. 19세기 독일의 언어학자 게오르그 폰 가벨렌츠(Georg von der Gabelentz, 1840-1893)가 최초 중국어 문법서를 간행했고, 청대(淸代) 학자 마건충(馬建忠)이 중국고문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면서 오늘날 고전연구에는 문법연구가 필수적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난중일기》를 해석하는 데도 일반적인 고전 문법과 용례를 적용하여 분석해야 한다. 1935년 일정시대 때 일본인이 간행한 《난중일기초》에는 미상과 오독의 글자 등의 문제점이 매우 많았는데, 모두 교감 대상인 내용들이었다. 필자는 이와 함께 국가기록유산DB의 난중일기 오타를 포함하여 후대의 활자본의 오류를 모두 바로잡은 한문판 《정본 난중일기》(2008)와 《종합교감 난중일기정본》(2015), 개정판《교감원문 난중일기》(2017)를 간행한 바 있다.

고전 번역에 있어서 글자를 맞게 해독해도 말이 안되면 오역이 되고 알맞게 번역해도 글자가 다르면 역시 오독이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이 오역과 오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간혹 지나친 억측과 상상에 치중하다보면 원문상의 문맥을 벗어나게 되어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중국 청나라 때 학자 단옥재(段玉裁)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을 경우 잘못되지 않은 것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 심각한 혼란을 초래한다.”고 말한 것도 역시 그러한 점을 염두하여 한 말이다.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임란사료를 통한 문헌연구와 인물 연구, 정신분석, 해전연구 등 연구해야할 과제가 매우 많다. 필자는 이러한 폭넓은 연구를 해야함에도 지엽적인 글자 몇 개를 운운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게 여겨진다. 그러함에도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즉, 《난중일기》병신년 9월 14일자에 나오는 여진(女眞)내용이다.

일본인이 해독한 《난중일기초》에는 여진(女眞) 뒤에 “스물입(卄)”, “서른삽(卅)”자가 있다. 그러나 실제《난중일기》전체 내용 중 인물 뒤에 숫자를 적은 예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 두 글자를 《난중일기》에 나오는 20일을 뜻하는 “입일(卄日)”[갑오년 3월 20일]과 30척을 뜻하는 “삽척(卅隻)”[갑오년 3월 3일]의 글자와 비교해보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여진(女眞) 뒤에 글자는 공(共)자를 약간 변행해서 각각 쓴 글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판본대로 해석하면 말이 안되므로, 필자는 모두 “여진과 함께 하다”로 새롭게 번역했다. 이는 15년 전 국내최고 초서전문가들과 이미 검토한 내용이다.

《난중일기》에는 공(共)자가 72회 나온다. 이는 주로 부사어로 쓰였는데, “함께 이야기하다[共談]”, “함께 먹다[共啖]” 등의 내용이다. 여기서 공(共)은 중국어로 yiqi[一起], 영어로 “with”, 즉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순신은 인칭 뒤에 동사를 쓰면서 바로 그 뒤에 이 공(共)자를 보어(補語)로 자주 사용했다. 예문은 아래와 같다.

○ 장흥부사와 녹도만호가 와서 함께 했다[長興鹿島來共]<갑오 8월 13일>
○ 충청수사가 술을 내오기에 우수사와 두 조방장이 와서 함께 했다[忠淸水使進酒, 故右水使․兩助防將來共]<을미 9월 6일>
○ 활 15순을 쏘고 경상수사도 와서 함께 했다[射帿十五巡. 慶尙水使亦來共]<병신 6월 24일>

 위의 예문을 봐도 공(共)자는 어떤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共)자 앞에 여자 이름이 오면 의미가 달라지는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에 오해가 될 만한 어떤 의미도 더하지 않았다.

 ○ 저녁에 좌수사가 와서 이별주를 마시고 전송하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여자종)와 함께 했다.[夕左水使來, 別盃而送, 則醉倒宿于大廳. 介與之共.]<병신 3월 9일>

위 예문의 공(共)자는 여전히 “함께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로 여진공[女眞共]의 공(共)자도 이처럼 글자대로 해석하면 이해되므로, 굳이 다른 말을 더 넣을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사례를 보겠다. 유성룡이 생질 이찬(李燦)에게 보낸 편지에 공(共)자를 사용한 내용이 있다.

 ○ 개복(改服)하는 것은 마땅히 관부에서 성복하기를 기다린다. 그런 연후에 여염집 사람과 함께 했을 뿐이다[與閭閻之人共爲之而已]《서애집》

여기서도 공(共)자의 의미는 위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주민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 공(共)자를 문학적 상상력을 더할 수 있는 시로 사용할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표현될까. 매천 황현이 읊은 시를 예로 들겠다.

 ○ 행색이 가쁜한데 처와 딸과 함께 했네[行色翩然妻女共](《매천집》〈聞金滄江去國作〉)

이 시구에서 처녀공(妻女共)의 공(共)자는 아내와 딸과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가족간의 화목한 의미가 담겨 있을 뿐, 이 역시 오해가 될만한 어떠한 의미도 들어 있지 않다.

요컨대 위의 여진공[女眞共]의 공(共)자는 위의 여러 예문에서 쓰인 공(共)자의 의미와 서로 다르지 않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담화를 나누거나 틈이 날 때 시간을 함께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글자일 뿐이다. 이처럼 고전을 해석하는 데는 글자의 차이로 인해 오역이나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유사한 사례와 정확한 문맥을 짚어보면 정확한 해답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간혹 일반인들이 이순신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의미를 단정할 때는 반드시 세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고전전문가들의 검토가 있어야 한다.

 

글: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여해고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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