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에는 저작권도, 판권도, 표절 논란도 없다' -

▲ 2018번째 성탄절…가난하고 힘없는 소수와 약자에 대한 베풂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성탄절의 출발'이다. 2018번째 성탄절…가난하고 힘없는 소수와 약자에 대한 베풂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성탄절의 출발'이다.

오늘은 예수 탄생 2018년째가 되는 성탄절(聖誕節)이다.

성탄절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최대의 축제날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세상 끝날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것이 성탄절의 핵심 진리이기도 하다.

당시 예수가 살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는 천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학교에 다닌 적도 없으며, 출신지역이나 성장배경을 봐도 당시 주류사회의 시각에서는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보는 것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칭했으니 예수는 그 시대의 이단아이며 신성모독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 세상'으로' 태어난 것이지 이 세상으로'부터'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 예수는 역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역사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육신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은 곧 '하나님의 강림'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 앞에 나아가지만 신이 인간에게 사랑으로 다가온 것은 기독교(가톨릭, 개신교)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심판하게 되면 살아남을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죽으실 수 없기에, 인간의 몸으로, 즉 성육신을 통해 예수가 돼 이 땅에 오셨고, 또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언제 닥칠지 모르며,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기에 그래서 성탄절은 우리에게 더 간절하기만 하다.

하지만 예수가 탄생한 후 2018년째 되는 성탄절이 왔으나 지금 우리 곁엔 진정한 성탄절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 동안 경제성장의 상징이던 백화점이나 각종 상가를 화려하게 치장하던 네온 싸인은 이미사라진지 오래고 캐럴마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각종 통계 수치가 말해주듯 사랑의열매 연탄은행 구세군 등의 모금액은 지난해보다 20∼30%씩 주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손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비현실적 경제정책과 관료들의 무능과 불신으로 경제는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도리어 내년 전망은 더 암울하기만 하다.

이로인해 기업의 투자와 성장은 멈추고 전례없는 고용참사와 자영업자의 위기,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권력남용과 비리 의혹 등 우울한 날들만 이어지고 있고, 가진자들과 소외된 사람과의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격차는 날로 커져만 가고 있으며, 눈만 뜨고 일어나면 사건에 사고 등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날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마디로 총제적 난국이며 위기의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성탄절과 세모를 맞아 이제 우리 스스로를 한 번 되돌아 볼때가 됐다.

그 옛날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는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성탄절 메시지는 바로 '사랑과 나눔'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그대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가치를 그대로 행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보이신 사랑은 자기를 죽여 모두를 살리신 사랑이다. 즉 '자기희생적 사랑'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랑도 이 사랑보다 진실하고 희생적이고 참된 사랑은 없다.

사랑을 디자인 하거나 창작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만이라도 예수님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사랑을 그대로 '모방'이라도 해보자.

'사랑에는 저작권도, 판권도, 표절 논란도 없다'

성탄절은 혼자만의 내 가족만의 행복한 성탄절이 아니라 소수와 약자에 대한 자선과 나눔을 실천하는 진정한 사랑의 날로 가난한 자, 고통당하는 자, 고독한 자를 위해 오시는 예수가 함께하는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소수와 약자에 대한 베풂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곧 '성탄절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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