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로고 시안과 현재 로고

1일부터 NHN은 1일 포털 네이버를 중점 사업으로 하는 네이버 주식회사와 한게임 사업을 하는 NHN엔터테인먼트로 분할됐다. 네이버컴과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이 합병한지 13년 만이다.

네이버 앞으로 포털 네이버 운영과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글로벌화, 캠프모바일 등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할 예정이다.  특히 라인을 통해 글로벌 경쟁을 할 단초를 만든 만큼 글로벌 시장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네이버-한게임 분할, 13년간 역사 총정리=네이버는 1999년 6월 이해진 現 네이버 CSO(Chief Strategy Officer, 최고전략책임자)를 비롯한 창업멤버들의 5년여 간의 준비 끝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회사명은 네이버컴이었다.

이해진 CSO는 사내 간담회에서 “처음 검색을 시작할 때, 정보가 쉽게 검색이 돼서 일반 사람들도 다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면 검색이 사회를 정말 좋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찾고 사용할 수 있게 하고자 했던 창업자의 의도는 서비스명과 로고에도 반영됐다.

당시 네이버 창업 멤버들은 서비스명을 정하면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서비스명이 세 음절 정도이고, 받침이 없어 발음하기 쉬워야 하고, 도메인명으로 쓰여야 하니 영문으로도 어울리는 단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계속되는 논의 끝에 ‘항해하다’라는 뜻의 navigate에 ‘사람’을 뜻하는 er을 결합해 네이버(NAVER)라는 이름이 나왔다.

네이버로 서비스명이 정해지기 전에 처음 나왔던 이름은 ‘웹지기’였다. 웹지기는 당시 인기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부르던 호칭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름은 선택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이름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에 한 직원이 길가에 서있던 플라타너스를 보고, 서비스명도 ‘플라타너스’로 하자고 제안했고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틀 후, 다른 직원이 네이버라는 이름을 제안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네이버의 첫 로고도 ‘정보 공간 속으로의 탐험’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정보의 정글인 인터넷을 빠르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원하는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이드 이미지로 만들어 졌다.

막강한 경쟁자 만나다=좋은 뜻을 담은 서비스명과 로고를 정했지만, 사업은 쉽지 않았다. 당시 검색 분야에는 글로벌 기업 야후가 막강한 1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메일과 카페를 앞세운 다음도 선전하고 있었다.

당시 네이버는 검색 기술을 인정 받아 한국기술투자(KTIC)로부터 1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생각보다 트래픽이 늘어나지 않아 야후, 다음, 라이코스 등 기존 업체와의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9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라이코스는 업계 최초로 TV 광고까지 시작했다. 라이코스는 엄정화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야후도 2000년 초, 노 부부가 야후 쇼핑으로 2000년대 인기 게임기였던 DDR을 구입해 현란하게 춤을 추는 내용의 광고를 한 적이 있다.

네이버도 이런 경쟁 속에서 당시로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 모델 장윤주가 등장해 네이버에서 ‘사랑’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검색결과 숫자를 이야기하는 내용의 광고를 진행했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렇게 어려운 경쟁 상황 속에서 네이버는 2000년 4월 27일 한게임과 합병을 추진하고, 첫 번째 광고 실패를 교훈 삼아 마케팅 대신 서비스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00년에 세계최초로 통합검색을 출시했고, 2001년 상반기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검색광고 모델을 선보였다.

NHN, 벤처 신화 쓰다=합병 후 서비스에 집중하며 경쟁력을 갖춰가던 네이버는 2001년 9월 사명을 변경했다. 네이버컴이라는 기존 이름이 포털(네이버)과 게임(한게임)의 영역을 대표하기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네이버컴의 새로운 이름은 ‘Next Human Network’의 줄임말인 NHN이었다. 영문 뜻뿐만 아니라 NHN은 네이버(Naver)와 한게임(Hangame)을 연상할 수 있는 이니셜이기도 했다.

NHN으로 사명을 바꾼 네이버는 본격적으로 지식iN, 블로그, 카페와 같은 서비스를 성공 시키며 우리나라 벤처 신화를 만들어 갔다.

지식iN은 이해진 CSO가 네이버의 검색 질의 중 검색 결과 콘텐츠가 0건인 검색 질의들을 살펴보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 탄생됐다. 당시에는 ‘우리 동네 슈퍼는 언제 문을 여나요?’와 같은 검색 질의에는 답변이 없었는데, 이해진 CSO는 묻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잘 연결되기만 한다면 일반인의 작은 정보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식iN을 만든 것이다. 이후 나온 블로그, 카페 등의 서비스도 성공했다.

2003년 4월에는 처음으로 검색 업계의 거대한 존재였던 글로벌 기업 야후를 누르고 검색 서비스 방문자수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2005년에는 포털 부문에서도 코리안클릭, 매트릭스, 랭키닷컴에서 발표한 주간/월간 UV 1위를 달성했다.

네이버는 안정적으로 검색광고 매출이 성장하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그 다음을 준비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자 보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전문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를 나누기도 했다.

2009년에는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 및 인프라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NHN비즈니스플랫폼(NBP)을 설립했다. 그 결과 2011년부터는 독자적인 광고 플랫폼을 구축, 적용했고, 그 해 2조 147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NBP 분할 이후 인프라 분야의 전문성과 운영 효율성을 갖게 된 네이버는 탄탄한 인프라 기술력을 바탕으로 N드라이브처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지난 6월에는 자체 기술력으로 데이터센터를 오픈했다. 데이터센터로는 세계 최초로 미국 친환경건물인증(LEED)의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새로운 걸음=NHN은 지난 3월에는 라인과 모바일에 집중하기 위해 조직을 나눠 LINE+(라인플러스)와 캠프모바일을 신설하고 네이버와 한게임의 사업을 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8월 1일, 13년 간의 합병을 마치고 두 개의 법인으로 나누어졌다. 포털 부문의 회사명은 ‘네이버 주식회사’로 결정됐다.

1999년 우리나라 검색 산업에 뛰어들어 야후라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했던 네이버는 2013년 다시 네이버라는 이름을 가지고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막강한 기업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글로벌 무대 진출에 노력중이다.

네이버의 글로벌 진출에는 라인이 앞장서고 있다. 라인은 230여개 국가에서 2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글로벌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라인의 글로벌 진출로 우리나라의 콘텐츠들도 새로운 글로벌 진출로를 확보하게 됐다. 실제로 20여 개의 한국 개발사 게임이 라인을 통해 전세계에 서비스되고 있으며,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라인 윈드러너’는 출시 3개월 만에 다운로드 수 1,000만 건을 돌파했다. 트리노드의 '라인 포코팡'과 파티게임즈의 ‘아이러브커피’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구글플레이 순위에서 10위 권에 올랐다. 또한, YG엔터테인먼트의 싸이, 지드래곤, 2NE1 등의 스티커가 전세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캠프모바일의 글로벌 도전도 눈길을 끈다. 캠프모바일의 폐쇄형 SNS 밴드는 현재 1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는데, 사용자 중 약 20%가 일본, 대만, 태국, 북미 등 해외 사용자일 정도다. 또, 스마트폰 런처 앱인 도돌런처는 페이스북의 런처인 ‘페이스북 홈’과 카카오의 런처인 ‘카카오 홈’보다 빨리 출시되는 등 모바일 환경에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네이버의 이러한 성과 뒤에는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다. 국내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던 2000년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을 설립했고, 2004년에는 중국 게임포털 아워게임을 1천여 억 원에 인수했고, 2005년 7월에는 김범수 당시 글로벌 대표가 직접 총괄하여 NHN USA를 설립했다.

실패의 경험도 있다. 2010년 4월 중국 게임사업에서 철수했고, 2011년 12월에는 NHN USA가 100% 지분을 보유한 이지게임스를 아에리아게임즈에 현물 출자 형식으로 매각하는 등 네이버의 글로벌 진출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해진 네이버 CSO는 사내강연에서 “기업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소프트웨어로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지금 불가능하다면 징검다리가 돼서 후배들의 발판이 되더라도 계속 도전할 것이다”고 말했다.

임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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