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의 근조쌀드리미화환과 근조쌀드리미리본

장례식장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흰색 국화로 된 근조화환이다. 흰색 국화를 3단으로 꽂아 만든 화환에 보낸 사람의 이름을 달아 장례식장에 놓는 문화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국화를 죽음의 상징으로 여기는 유럽 서구문화가 유입되던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흰색 국화는 흰색 상복을 입는 우리민족의 장례문화와 맞고 흰색 국화가 상징하는 정조, 고결의 뜻이 고인을 기리는 의미와 잘 어울려서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애도의 글을 비단에 써 붙이는 민족고유의 만장(輓章) 문화가 더해져 오늘 날의 근조화환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시초야 어찌됐든 근조화환문화는 이제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임에 틀림없다.

장례식장에 들어 설 때 근조화환이 하나도 없으면 왠지 쓸쓸해 보이고 많으면 고인이나 상주의 부와 명예가 높아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장례식이 모두 도시의 장례식장에서 행해지면서 시작됐다.

협소한 장례식장에 근조화환이 넘치면 꽃 없이 리본만 걸어 놓을 수밖에 없다. 정조와 고결의 상징 국화와 애도의 글 만장 리본문구는 간데없고 근조화환을 보낸 사람의 이름만 장례식장 벽에 붙어 있다. 근조화환을 보낸 사람의 성의를 배려한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근조화환을 보낸 사람이나 받는 사람은 물론, 화훼농가에도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근조화환을 보낸 사람은 국화와 애도문구가 없으니 서운 할 테고, 반입된 근조화환을 자체 폐기하는 일부 장례식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례식장에서는 근조화환이 수거 재판매되기 때문에 화훼농가에도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근조화환문화의 역사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사회적 명분과 가치가 희석된 근조화환문화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근조화환은 반입이 가능한 수량만 받고 나머지는 訃告를 통해 근조화환은 사양하고 대신 근조쌀드리米리본을 받는 喪家가 늘고 있다. 근조쌀드리미리본 서비서는 장례식장에 근조화환 반입이 불가할 경우 쌀 30kg과 애도문구가 포함된 근조쌀드리미리본으로 10만원하는 근조화환을 대신하는 것이다.

상주입장에서는 화환 1개당 쌀 30kg이 남으니 고인의 뜻을 기리며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할 수 있고, 보내는 사람은 근조화환과 같은 비용으로 애도문구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표시하고 쌀 30kg을 함께 보낼 수 있으니 또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예 근조화환 대신 화환 형태의 쌀로 구성된 근조쌀드리미화환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근조화환이 수십 수백 개씩 들어오는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에서 주로 이용하고 있으니 근조쌀드리미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근조쌀드리미화환은 드리미에서 제공하는 무료부고서비스를 요청하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드리미무료부고서비스는 드리미에서 이메일 팩스 문자메세지 등으로 무료부고를 제공하고, 부고에 “장소관계상 근조화환 대신 근조쌀드리미화환을 보내주시면 고인의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의 쌀을 나누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드리미 안내문구를 넣어 보내는 서비스다.

조남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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