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가 아닌 당사자라는 사실 명심해야 -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공개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4차 정상회담의 목표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기로에 선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북특사단 파견 카드를 건너뛰고 곧바로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거듭 밝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나흘 만에 같은 의사를 재확인 한 것이다.

 

이러한 남북 정상회담의 공개적 제안은 지난 5·26 판문점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외하곤 앞서 열렸던 4·27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과 9·19 평양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과는 접근법이 사뭇 다르다는 평가다.

 

지난 1·3차 남북 정상회담 때는 대북 특사단 파견 사실을 먼저 공개하고 특사단의 방북 성과로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발표 해왔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거듭 밝힌 것은 美→南北→北美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통해 좌초 위기에 놓였던 6·12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지난해 전례를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공개 메시지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은 앞선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선(先) 특사 파견 공개- 후(後)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방법과 다른 것은 북한이 지난해와 달리 특사단 파견과 관련한 남북 간 물밑 접촉에 응하지 않는 등 남북 간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높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북한의 비핵화 해법에 대한 접근방식이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북한 3자의 입장이 너무나 크고 뚜렷하다는데 우려가 있다.

 

미국은 '선(先) 폐기 후(後) 제재 완화' 즉 핵무기와 핵 물질, 핵 시설 등의 완전한 폐기를 전제로 한 일괄 타결 방식인 '빅딜'을 주장을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비핵화 조치와 유엔 제재 해제 등 보상을 맞교환해 가며 최종 목표에 이르는 동시적·단계적 방식인 '스몰딜'을 주장 하고 있다.

 

한국은 빅딜과 스몰딜의 중간 지대인 이도저도 아닌 미들딜 방식인 '굿이너프 딜'을 제안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양측으로 부터 모두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차 정상회담과 관련, "빠를 필요는 없다. 올바른 딜이어야 한다"고 말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근본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을 위한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다.

 

북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는 내놓지 않은 채 제재 해제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안팎으로 거듭 천명했다"고 밝혔지만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향해 할 말은 하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오지랖' 모욕에 단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앞장서서 주제넘게 간섭한다'고 비아냥대는 말로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주권 국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정도로 북한 앞에만 서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너무 작아지고 있다.

 

물론 전술적 차원에서 그렇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략적 측면에서 북 비핵화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남한은 남북과 남북미 관계의 당사자요, 북미 관계의 중재자 이기도 하다. 지나친 낙관론에서 벗어나 냉정한 자세로 대북 접촉에 나서야 한다.

 

물론 중재로서의 역할이 한정된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비핵화 목표를 명확하게 정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과 로드맵을 구하는 일이다.

 

북한을 향해서도 비핵화 수용 없는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다는 걸 북에 분명하게 인식시켜줘야 한다.

 

향후 전개될 남북 정상회담과 추가 한미 정상회담에 비핵화 협상의 운명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또 한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더 큰 기회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디딤돌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남북 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김 위원장의 호응을 촉구했듯이, 비핵화 진전 없는 정상회담은 무의미하며 더 나아가 원칙 없는 3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도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비핵화 작업의 청사진을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비상한 각오로 협상에 임하길 바란다.

 

김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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