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데일리그리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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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그리드=한겨레 기자] LG그룹은 LG화학을 모기업으로 하는 기업이다. LG화학의 전신은 1947년 1월 설립된 락희화학공업이다.

LG그룹 창업의 역사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은 1931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구인회상점이라는 상호명의 포목상을 창업했다.

1940년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발전, 사업 운수와 무역 등으로 사업이 확대됐다. 해방 이후 사업들을 모두 정리하고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당시 동생인 구철회(LIG그룹 초대 회장)와 함께 동업을 했는데, 사업이 확장이 되면서 1941년  1월 사돈이자 진주의 만석꾼 거부였던 허만정 씨와 6대 4의 지분을 가지고 동업을 시작했다.

허만정 씨가 창업 자금을 대고 그의 아들 허준구(GS그룹 허창수 회장의 부친) 씨가 영업이사로 참여하면서 락희화학공업이 출범했다. 1945년 해방이후에는 조선흥업사(朝鮮興業社)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구씨와 허씨 두 가문은 2005년 1월 LG그룹이 LG그룹과 GS그룹으로 분리되던 57년간 분쟁 없이 동업관계를 이끌어왔고, 그룹을 법적 분리 후, 구씨 가문은 LG그룹을, 허씨 가문은 GS그룹을 각각 맡아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LG그룹이 출범한 것은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LG로 바꾼다. 그룹에선 LG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Lucky와 Goldstar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럭키금성'그룹이던 시절 줄임말로 '럭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구인회 회장은 그걸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LG그룹은 락희화학을 통해 국내 최초의 치약인 ‘럭키치약’, 비누, 플라스틱 식기류 등 기초화학 분야의 생활용품 제조로 출발한 뒤, 금성사(현, LG전자)를 세워 전화기, 라디오, TV, 냉장고 등 전자제품 시장에 진출하여 그룹의 기틀을 갖췄다.

1974년엔 럭키그룹, 1983년 럭키금성그룹으로 불리다 1995년 지금의 LG그룹으로 명칭을 바꿨으며, 2005년에는 LG그룹이 LG그룹과 GS그룹으로 분리됐다. 현재 LG그룹은 재계 순위 3위(2017년), 지주회사 (주)LG를 중심으로 전자, 화학, 통신, 서비스 부문에서 사업을 하며, 주력 계열사는 매출 기준으로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이다. 

1984년 인하우스 광고기획사인 LG애드가 발족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 및 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1987년 여의도 럭키금성트윈타워로 이전 후 이듬해에 종합연수원 '인화원'을 열었다. 1990년 기업이념을 변경하고 이듬해부터 주요 계열사에 '사업문화단위(CU)'를 도입해 기업 단위가 아닌 업종 단위로 사업군을 나눴다.

친족들에게 방계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 후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하였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주)LG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7년에 구본준 부회장 중심의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연내 단행했다.

각종 만악의 근원으로 오해받는 한국의 재벌가 중 욕을 덜 먹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욕을 상대적으로 덜 먹는거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탈세 의혹,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뇌물수수,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 LG도 논란이 될만한 흠결은 꽤 있다. 그래도 최근 국민여론의 가장 중점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그나마 재벌 중에서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타 재벌들과는 달리 치명상은 면했다.

사진 = LG
사진 = LG

범LG그룹의 금융잔혹사

범 LG그룹은 유달리 금융업과 인연이 없다. 본래 신용카드, 증권, 화재보험을 위시로한 금융업은 90년대까지는 전자, 화학과 함께 LG그룹의 삼각편대라고 할 정도였으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원래 단자회사 금성투자금융이 전환된 보람은행은 IMF 시절 하나은행에 합병되었다.

LG할부금융은 LG카드에 합병되었고, 그 천만인의 카드라던 LG카드는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어 신한카드에 합병되었다. 이 때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LG투자증권을 매각하기로 발표한다. LG투자증권이 사실상 LG금융의 지주회사격이었기에 이는 LG의 금융업 포기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LG투자증권·LG선물·LG투자신탁은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되었다가, 우리금융 민영화로 다시 다 팔려나갔다. 증권은 우리증권과 합병, 우리투자증권이 되었다가 다시 농협금융에 팔려 NH농협증권과 합병,NH투자증권이 됐다.

선물은 우리선물이 되었다가, 증권과 같이 농협에 팔려 NH농협선물과 합병, NH선물이 되었다. 투신은 우리투자신탁과 합병, 우리자산운용이 되었다가, 키움증권에 팔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됐다.

부민상호저축은행은 SLS그룹을 거쳐, 한국·진흥·경기저축은행에 매각되어 영남상호저축은행이 되었다가,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 경은·부산·토마토2저축은행과 함께 가교저축은행인 예솔저축은행으로 흡수된 후 기업은행에 인수되어 IBK저축은행이 됐다.

범LG계열에서 금융은 최고 전문가라고 불렸던 LIG그룹의 계열사인 LIG생명이 시너지효과 저조를 이유로 우리금융지주에 매각돼 우리아비바생명이 되었다가, 우리금융의 민영화 과정에서 NH농협은행에 매각돼고, 인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DGB금융지주에 팔려 DGB생명이 되었다.

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오너의 무리한 건설업 진출과 그에 따른 회사채 사기발행의 뒷감당을 위해 매각, KB금융지주에서 인수해 KB손해보험이 됐다.

대부분의 재벌들이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LG그룹은 안정적인 자금 조달원이 없어 보수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LG생활건강과 LG유플러스가 있지만, 이게 다른 그룹 캐시카우처럼 돈을 긁어오는 건 아니다.

반도체 잔혹사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IMF 관리체제가 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벌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빅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LG그룹의 LG반도체를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에 억지로 넘겨주게 된다.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은행신규대출을 모두 끊어버리는 금융제재까지 당하자 결국 포기한다. 이때 매각 대금으로 받은 현금으로 데이콤을 인수하고 LG화재그룹을 분가시켰다.

당시 LG반도체는 당시 시장에서 주력으로 팔리던 128Mbit DRAM에 대한 투자는 건너뛰고 히타치로부터 도입한 공정으로 차세대 RAM으로 각광받던 RDRAM 생산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RDRAM의 참상은 해당 항목 및 제조사 램버스, 주수요처인 펜티엄 3, 펜티엄 4, 참조. 당장 수십억이 없어 대기업 집단들이 무너지던 시절에 안 팔릴 제품에 올인한 LG반도체의 미래는 뻔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훗날 터진 LG의 흑역사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LG가 반도체를 안고 갈 여력은 더욱 없었다. 오히려 LG반도체가 있었으면 연쇄 부실로 그룹이 공중분해될 위기였을 것이다.

주요 사업 및 역사

LG그룹은 2003년 (주)LG 지주회사 출범 후 전자, 화학, 통신, 서비스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단순화해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주력 계열사는 매출 기준으로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이노텍 순이다.

전자부문 계열사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실리콘웍스, 루셈, 화학부문 계열사는 LG화학, 팜한농,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코카-콜라음료, 해태htb, LG-TOSTEM, LG MMA, 더페이스샵 등이다. 통신/서비스 부문 계열사로는 LG U+, LG CNS, LG상사, LG경제연구원, LG스포츠, 판토스, 서브원, HS애드, 지투알(GⅡR) 등이 있다.

계열
LG그룹은 국내에 총 68개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다. 이 중 상장사는 11개사, 비상장사는 57개사다. (주)LG는 LG그룹의 지주회사로서 2017년 12월 말 기준 LG전자(주), (주)LG화학, (주)LG유플러스, LG CNS, 루셈, LG스포츠를 포함, 총 14개의 국내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LG그룹에서 분리된 기업들로는 2003년에 LG전선(현, LS전선), LG니꼬동제련(현, LS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현 E1), 극동도시가스(현, 예스코), LG산전(현, LS산전) 등이 있고, 2004년에는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 LG유통(현, GS리테일), LG홈쇼핑(현, GS홈쇼핑), LG스포츠(현, GS스포츠) 등이 (주)GS홀딩스로 법적 분리되었다.

이외 분리 계열사로 LG카드(현, 신한카드), LG화재(현, KB손해보험), LG증권(현, NH투자증권),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 등이 있다.

LG그룹은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를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LG사이언스파크에서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 CNS 등 8개 계열사 연구인력 1만 7천여 명이 집결해 전자, 화학, 통신, 서비스 부문에서 이종 사업간 융복합 연구를 펼치고 있다.

업계평판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에 부합한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현재는 분사한 GS, LS 등을 포함한 범 LG그룹 오너 가문 임원진 상당수가 군필이다. 심지어 창업 1세대에 준하는 2세대 오너들은 모두들 상병장 만기 제대에 일부는 위관급 장교나 소령이나 중령 같은 간부급 장교로 전역했을 정도. 3세대, 4세대로 내려올수록 해외 국적 취득 등의 이유로 인한 면제자도 존재하지만 타 대기업 대비 상당히 높은 비율인 건 사실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LG그룹도 K스포츠재단과미르재단에 78억을 출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재벌 기업 총수들을 대상으로 한 청문회에서 별로 지목이 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돈을 냈는데 받은 것이 없어서다.

그나마도 정부에 요구한 게 2차 전지(전기차) 활성화였다고 한다. 물론, LG그룹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전기차 사업에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니 넓은 의미의 청탁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대놓고 특혜를 받은 대림산업 등에 비하면 덜하긴 하다.

오너 일가

창업주는 연암 구인회 회장이며, 현 회장은 구광모이다.

능성 구씨는 대한민국 재벌 가문들 중에서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지원한 가문이다. 최근들어 세계 5G 선발 통신기업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선택하는 등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의 산하에 있어서 서구 선진국가들에게 외면당하는 화웨이의 영향력 하에 있는 친중매국기업이라는 소리가 인터넷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기도 하다. 사농공상 일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딸은 물론 안주인들조차 문밖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 일가의 여성(이명희, 이부진 등)들이 기업 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경영 승계에서도 마치 옛 양반 가문이나 조선 왕실처럼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초대 구인회 회장 본인부터 구본무 회장까지 모두 장남이며, 구본무 회장의 경우 유일한 아들이 사고로 일찍 죽자 딸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조카인 구광모(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를 양자로 입양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원칙이지만 대신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재산 상속 및 경영권 계승과 관련된 갈등은 적은 편이다.

LG그룹 구광모 회장은 취임 2년차를 맞아 혁신 인사를 단행했다. 그동안 사업을 이끌어 온 주요 계열사 60대 최고경영진 가운데 상당수를 50대 초중반 CEO로 교체했고, 30대 여성 상무를 비롯해 젊은 인재를 대거 중용했다.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미래 준비를 가속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사진 = LG그룹 구광모 회장
사진 = LG그룹 구광모 회장

구광모 회장은 누구?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국내 10대 재벌 총수 중 유일한 40대이다. 원래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큰아들이었으나 2004년 구본무 회장이 양자로 들이면서 LG그룹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2006년 LG전자 재경 부문에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와 과장에 이어 LG전자 미국법인 등을 거치며 2018년 LG전자 상무로 재직 중 5월 20일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후 6월 29일 서울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LG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아내는 식품첨가물·원료의약품 제조업체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 정효정 씨.

 구광모 회장은 한남동에 두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급 아파트로 불리는 ‘한남더힐’이며 나머지 하나도 한남동에 소재 한 고급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은 2011년에, 한남더힐은 2016년에 각각 매입했다.

한남더힐은 각 세대별 독립정원, 고급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연회장, 골프장 등 완벽한 편의시설과 철통보안으로 유명인들이 살기 안성맞춤이다.

고 구본무 회장 타계 이후 관심이 쏠렸던 것 중 하나가 구광모 회장이 고 구본무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 대한 상속 여부.

재벌가에서 총수의 집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곧 그룹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후계자라는 ‘인정’과도 같았기 때문아다

하지만 구광모 회장은 상속받지 못했다. 이집은 구광모 회장이 아닌 고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씨와 친딸들에게 분할 상속됐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구본무 아내와 딸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 아니면 구광모 회장이 양자라서”라며 구설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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