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에셋 조경환, 사업 실패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바꾸다

돈에 관한 명언 중에 ‘돈이란 바닷물과도 같다. 그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 간다’라는 말이 있다. 돈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 더 많은 갈증을 느껴 그보다 더 많은 양의 돈을 갖고 싶어지는 욕심이 커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명언 중에는 ‘돈은 머리에 넣고 다녀라. 절대로 가슴에 품지마라’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돈을 안고 있으려만 하지 말고 지혜롭게 돈을 사용하고 다스리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우리는 돈이라는 물질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에서부터 입고 덮는 것까지 돈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만큼 냉정한 것이 돈이고, 그게 바로 경제의 기본 구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자산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는 로이에셋 조경환 이사를 만나 그에게서 돈의 가치와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돈을 다루는 금융 영업을 통해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돈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절약과 노력으로 삶의 기반을 다지다
로이에셋 조경환 이사는 30대의 젊은 자산관리사이다.
어떤 이는 얼핏 30여년이라는 짧은 인생의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들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라도 자신 있게 돈의 심리에 대해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이는 그만큼의 경험과 결과를 바탕으로 해야 하고 신뢰를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계급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로이에셋의 조경환 이사는 무엇보다 돈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니 지혜롭게 돈을 모으고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조경환 이사는 대학시절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다’라는 교육 철학을 강조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기에 자신 스스로 관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재산이 없던 사람은 재물이 생기면 그들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할 수는 있지만 부족함과 어려움 없었던 사람은 재물이 없어지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조경환 이사도 어린 시절은 비교적 남부럽지 않은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 졸업 후 급격히 가사가 기울어지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편의점, 서빙, 전단지 살포 등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강아지와 꽃을 팔기도 했다. 그리고 벌어들이는 모든 소득은 약간의 용돈을 제외하고 가사에 보태야만 했고, 약 80% 이상은 꼬박꼬박 저축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독하게 살았던 것 같다”고 말하는 조경환 이사는 잠시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회상에 잠긴다. “나는 그때부터 늘 생각했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나를 보면서 언젠가는 나 같은 사람을 고용하는 ‘누군가’가 되어야 겠다”고 조경환 이사는 말한다. 이후에도 그는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에 매진한다.   

첫 사업의 실패가 인생을 바꾸다
조경환 이사는 무서우리만큼 독하게 저축을 이어갔다. 그 결과 스물 한 살의 적은 나이에 송파구 신천에 ‘기로스 케밥’이라는 매장을 차리면서 자신의 꿈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그가 말하는 ‘누군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큼 경영은 쉽지 않았다. 마음과 같이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따라주지 않았고, 매출도 신통치는 않았다.
결국 1년 만에 문을 닫아야만 했고, 이는 자신이 생각했던 ‘누군가’의 세상은 달콤함 보다는 냉정함이 녹아있는 쓰디쓴 고통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실패는 또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좋지 못한 결과가 오히려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절치부심하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조경환 이사는 이번에는 가족들과 같이 강동구 강동역에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를 인수해 운영했다. 인수한 베이커리 매장은 강동구에서 최하위 매출을 기록하며 근근이 연명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조경환 이사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최고가 될 수 있는지를 이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매장 주변의 대형 피트니스센터를 비롯해 기업, 대학병원 등을 프랜차이즈 가맹본사의 도움 없이 발로 뛰며 개별적으로 제휴를 맺었고, 그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빵 배달서비스도 실시했다.
오후 10시 정도면 문을 닫는 다른 베이커리 매장과 달리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했고, 새벽 6시에 개장하여 직장인들의 아침 식사대용으로 신선한 모카빵을 단돈 1,000원에 판매하는 모닝세일을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후 소문이 돌면서 단골 고객도 많이 생기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까지 있었다. 결국 매장을 인수한지 5년 만에 강동구 매출 1위 매장으로 만들면서 인간 조경환의 성공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력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조경환 이사는 26살 나이에 가족들에게 베이커리 매장을 맡기고 보험회사에 입사하여 금융세일즈를 시작했다.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입사 후 제일 먼저 세 가지를 다짐하게 된다. 첫째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루에 7명 이상의 고객을 만나는 것으로 이는 동료 직원들이 쉴 때에도 일을 해야 했고 약 3년 동안은 하루에 3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고 했다.
끝으로 세 번째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SNS에 자기 자신과 정보를 꾸준히 알리는 일이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M보험사에서 엄청난 실적으로 이어지면서 28살 약관의 나이로 A생명사에 최연소 부 지점장으로 스카우트 된다.
“A보험으로 자리를 이동한 후에는 팀원들과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먹 거리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게 된다. 내 인생에서 거의 절반은 노력이고, 그것이 나를 일으켜 준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조경환 이사는 이듬해 (주)농업법인우성의 이사, 그 해 9월 전문 자산관리회사의 지점장으로 이동하며 성공의 정점을 찍기 위해 뛰고 또 뛰게 된다.

▲ OK는 조경환 이사 자신은 물론 고객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와 같다.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다
이후 그는 VVIP Luxury Travel Mambership 업체인 퀸터센셜리 산하의 유통회사인 큐엠씨 부사장으로 이직해 금융업 부문의 커리어를 쌓고, 올해 투자자문사 이사로 스카우트되면서 금융업계에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나가게 된다.
그는 돈을 다루는 금융 영업을 통해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돈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돈이 아닌 ‘사람’과 ‘관계’에 집중 할수록 아이러니 하게도 더 많은 돈이 그에게 맡겨졌고 재산적인 가치를 따지기보다 돈의 가치, 즉 그것은 자산을 맡긴 그들의 피와 땀이라는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이는 조경환 이사가 업계 누구보다도 돈을 냉철하게 관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올해 창조경영 청년기업 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부산 김무성 국회의원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근우회 홍보위원, 인천 아시안게임 국민대통합 성공기원 축제 준비 위원회 청년단장,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직능총괄본부 문화예술복지위원회 본부장 등을 역임하게 된다.

누구나 노력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경환 이사의 숨은 노력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의 노력과 진정성을 알아보았다. 성공의 반은 그의 말대로 노력이었고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다짐한다.
조경환 이사의 성공 철학은 간단하지만 심오했다.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하기에 더욱 심오했다. 끝으로 그가 생각하는 돈의 가치를 그의 말로 인용해 본다.

“나에게 맡기는 돈이 종이에 잉크를 발라놓은 무기물이나 전산 상에 감정 없이 표시되어 있는 몇 자리 숫자가 아닌, 길에서 강아지를 팔며 목이 터져라 호객을 하던 성대의 아픔이고, 새벽같이 일어나 빵을 굽는 손끝의 피로함이며, 때로는 실패와 절망 속에 흘리는 눈물임을 나의 경험을 통해서 너무도 절절하게 배워왔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돈을 쉽게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 치열하게 공부했고, 남보다 덜 자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미래라는 소중한 가치를 나에게 맡기고 있기에...”

황선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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