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창작물이다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고전 번역을 잘하려면 한문으로 된 경전과 역사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고전에 사용되는 문장과 용어는 대부분 기존에 사용된 용례를 근거하여 저작된다. 그러므로 고사와 용어 등의 전고(典故)를 많이 아는 것이 고전번역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령, 전고의 의미를 모른 채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로만 문장을 해석한다면,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오게 된다. 또한 전고의 의미를 알아도 그것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간혹 오역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고를 사용하되 문장의 문맥에 맞는 의미를 도출해 내는 것, 즉 단장취의(斷章取義)를 잘해야 한다.

  이순신의 저작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초서(草書)로 흘려 쓴 기록이다. 초서는 서로 다른 글자라도 동일한 형태의 글씨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초서해독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이를 위해 물론 글자형태를 잘 알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전후의 문맥을 짚을 수 있는 문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아무리 글자 해독을 해도 말이 되지 않으면 완전한 해독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초서의 기본서인 왕희지의 『초결백운가(草訣百韻歌)』와 손과정의 『서보(書譜)』 를 배웠지만, 초서는 배울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예로, 『갑오일기』1월 14일자를 보면, “설날 제사를 지낼 때 패를 지어 모여든 무리들이 무려 200여명이나 산을 둘러싸고 음식을 구걸하므로 제사를 뒤로 물렸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제사를 뒤로 물렸다”는 내용은 한문원문이 “제퇴(祭退)”로 되어 있다. 필자가 2007년 『충무공유사』에 있는 일기초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해독한 것이다. 그러나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간행한 『난중일기초』에는 이것이 “등퇴(登退)”로 잘못되어 있어서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또한 『무술일기』 9월 20일과 11월 11일자에 “묘도(猫島)”라는 섬이름이 나온다. 『충무공전서』에는 이것이 “유도(柚島)”로 잘못되어 있었는데, 필자가 2005년 처음으로 고증하여 바로잡았다. 이곳은 이순신이 명나라 군사들과 연합작전을 실시했던 곳으로, 당시의 사료나 일본측 사료에 모두 묘도로 표기되어 있다. 선조실록 선조 31년(무술, 1598)조, 군문도감이 선조에게 보고한 내용에 이순신이 직접 묘도를 언급한 내용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점 174곳을 바로잡고 문헌고증을 통해 정본화된 난중일기 원문을 만들었다. 중국의 교감학자(校勘學者) 진원(陳垣)의 교감이론을 적용하여 난중일기를 최초로 교감완역한 것이다. 지난 2010년 이것을 정리하여 교감완역본을 간행하였다. 난중일기는 초서로 어렵게 작성된 글이긴 하나 실시간 사실을 기록한 것이므로 대부분이 평서형의 문장이다. 그렇다보니 후대의 번역서에는 공교롭게 서로 일치하는 내용들이 많다. 문체의 특성상 한문의 뜻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간혹 교감완역본의 내용을 인용하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새로 발굴한 내용이나 독특한 표현 등 창작성의 글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이것이 연구자의 양심이며, 상호 존중함으로써 학문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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