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읭클피부과 김민선원장의 진료실 Episode 2

친한 동생 P군이 논현역 근처라면서 진료실을 찾았다. 미용실에 다녀오던 길이라는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두운 표정으로 속보뉴스를 보도하듯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그는 조금 길어진 머리숱을 쳐내다가 미용실 직원으로부터 동전만한 원형탈모가 두어 개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달음에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P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도대체 왜 그런거에요?” 라고 묻는다. 예전에 비해 다소 수척해져 보이는 P를 보며 나는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무슨일 있어?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건 아니구?” 나의 질문에 P는 답답하다는 듯 “스트레스는 늘... 이상하다. 별 일은 없었는데 도대체 왜 원형탈모가 생긴거죠? 저 이러다가 혹시 탈모가 생기는 거 아닌가요?”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런 대화는 굳이 P군이 아니더라도 진료실에서 내원환자들과 하루에도 몇 차례씩은 이루어지곤 한다. “늘 먹던 음식인데 오늘 먹고 난 후 온몸이 가려워요. 아~ 제가 최근 과음을 계속 하긴 했는데” “학생 때도 안 생기던 여드름이 갑자기 자꾸 올라와요. 최근 직장을 옮겨서 일은 좀 힘들긴 해요” “최근 들어 얼굴에 기미가 생겼는데 왜 그런거죠? 레이저 해야 하나요? 아~ 잠이요? 최근 잠을 못자긴 했어요. 야근이 좀 잦아서요” “갑자기 목이랑 가슴 쪽으로 두드러기가 생겼어요. 저 한 번도 알레르기 이런 거 없었거든요. 스트레스요? 그거야 늘 조금씩 받는 거죠 뭐~ 특별한 사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환자들과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결국에는 부정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만한 사건이나 환경적 변화, 오래된 생활 습관 등 한두 개는 반드시 발견되고는 한다. 나는 어려운 여러 가지 호르몬, 신경전달 물질 등의 기전과 면역체계 등 어려운 설명들은 생략하기로 하고 병변을 확인하고 주사처방, 치료 후 P군과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P군은 매사에 진지하고, 섬세하며 다소 걱정이 많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 적절한 음주를 즐기며 하루 반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운다. 그는 근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최근 직장 내에서 부서이동 때문에 신경 쓸 일들이 늘어났고, 같이 일하는 상사 때문에 속상한 일이 여러 번 있었으며, 몇 달 전 여자 친구와 결별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겸해 약간의 운동과 식이조절을 병행하여 2달 만에 7~8kg을 감량했다고 한다.

▲ 부정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만한 사건이나 환경적 변화, 오래된 생활 습관 등 한두 개는 반드시 발견되고 있다

 
조목조목 자신의 근황을 설명하며 이야기하던 P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한참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역시 스트레스였네요. 날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내 몸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도 같구요. 맞죠? 스트레스 해소는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은근하게 신경 쓰이는 일들이 최근에 많았거든요. 다이어트를 하지만 최근 술도 꽤나 자주 마셨고...” “맞아. 우리 뇌의 망각의 힘이란 꽤 대단하거든, 적응력도 뛰어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을만한 것들을 종이에 나열하듯 써보기 시작했는데 P군은 무려 13가지, 나는 8가지 정도의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이를 테면 <P군의 스트레스 노트> 1. 부서이동으로 업무량 증가, 2. 상사와의 일처리방식에 대해 충돌, 3. 최근 음주횟수 증가, 4. 흡연, 5. 불규칙적인 식사, 6. 애인과의 이별, 7. 수면시간 1시간 정도 감소, 8. 어머니가 간단한 수술을 위해 병원입원 등이다.
리스트를 작성하며 우리는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하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지~ 이제 이 리스트에 있는 스트레스들을 없애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아주 괜찮은 해소법을 알아내는 일만 남았네~”라고 결론을 내리며 크게 웃었다. 이후 스트레스를 풀어 줘야 할 필요가 있음에 서로 동의하고 주말에 친구들을 모아 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되는 뮤직페스티벌에 가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로 인한 자극은 부정적인 의미로 마이더스의 손처럼 우리 몸 모든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Brain-Skin connection(뇌-피부 연결고리)라는 용어 또한 스트레스 자극이 여러 피부질환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표현되는데, 실제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70% 정도에서 스트레스와 밀접한 피부질환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환경오염, 생활 습관 등과 같은 물리적인 자극과 개인의 인지반응과 관련한 심리적인 자극들이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고, 혹은 아예 인지조차 되지 못해 옷이 가랑비에 젖듯이 우리 몸의 평온한 상태를 파괴하며 여러 가지 질환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법을 익히고 수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 그 첫걸음은 자기 분석을 통한 자신만의 스트레스 리스트. 즉, ‘스트레스 노트’를 쓰는 것이 아닐까.

▲ 트윙클피부과 김민선 원장

 

 

 

 

 

김민선 원장 프로필
현재 강남 논현역 근처 트윙클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는 원장
웹툰과 추리소설, 인디음악과 스릴러영화를 좋아하고 착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지고 싶은 정 많고 평범한 의사

김민선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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