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든 장수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옛 봉건사회에서는 출세하기 위해 반드시 문과시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럴려면 다년간 유학(儒學)의 공부를 배워 문인적인 소양을 쌓아야 했다. 설사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수양을 중시하는 선비에게는 유학적 지식이 항상 필요하였다. 또한 역사상 뛰어난 위인들은 문무(文武)를 겸한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국가를 통치하고 조직을 지휘하는 리더로서 문인적인 바탕위에 무인의 위용을 갖추었던 것이다. 중국 촉한의 정치가 제갈량(諸葛亮)은 “장수가 군사를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학문과 무예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유학의 경전인 『시경(詩經)』의 「노송(魯頌)」「반수(泮水)」시를 보면, 문무를 겸비한 노(魯)나라 희공(僖公)에 대한 칭송시가 있다. “진실로 문무겸전하여 공많은 조상들이 밝게 강림하니 온전히 효도를 다하여 스스로 복을 구하네[允文允武 昭假烈祖 靡有不孝 自求伊祜]” 오랑캐를 토벌하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와 국학[泮宮]에서 정성으로 제사지내는 효행을 칭송한 것이다.

  이순신은 어릴 때부터 필법(筆法)이 정교하여 글씨를 잘 쓰고 한시(漢詩)를 잘 짓는 등 문인의 재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양 건천동(乾川洞, 현 서울 중구 인현동 1가 32-2번지) 거리에서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할 때는, 위엄이 있는 모습으로 지휘하는데, 나름대로 규율이 있어서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 이처럼 평소 문인의 재주가 남달라서 앞날이 촉망되었지만, 항상 붓을 던져 무인이 되려는 생각을 하였다(『충무공행록』) 무예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말을 달리면 어느 누구도 견줄 자가 없었다고 한다.

  유성룡은 “이순신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배워오다가 이순신에 이르러 처음 무과에 올랐다.”고 하였다. 유학을 숭상한 가문에서 이순신 같은 무인을 처음 배출한 것이다. 본래 유학의 유(儒, 선비 유)자는 유(柔, 부드러울 유)와 유(濡, 젖을 유)자의 뜻이 있다. 어진 이가 부드럽게 마음을 적셔주듯이 은연중에 남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 의미를 이론화한 것이 유가의 근본이념인 수기치인(修己治人, 내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이다. 이는 병가(兵家)의 이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마양저는 “자신을 닦고서 남을 대한다[修己以待人]”고 하였다(『사마법』).

  1576년 2월(당시 32세) 이순신은 무과시험의 병과(丙科)에 10년 만에 급제하였다. 이때 황석공의 『소서(素書)』를 강(講)하는 시험에서 시험관을 놀라게 하였다. 시험관이 “장량(張良)이 신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다녔다면 장량이 정말 죽지 않은 것인가?”하자, 이순신은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법이요, 『통감강목(通鑑綱目)』에 ‘임자(壬子) 6년에 유후(留侯) 장량(張良)이 졸(卒)하였다’고 하였으니, 어찌 신선을 따라가서 죽지 않았을 리 있겠습니까?”하였다. 시험관이 감탄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무인(武人)이 알 수 있는 것인가.”하였다. 이처럼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독실히 배웠기에 무인이 알기 어려운 내용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순신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몸가짐을 신중히 하여 마치 근신하는 선비와도 같았다. 선조(宣祖)도 이순신에 대해 “재주가 문무를 겸전했다.”고 평가했다(「선무공신교서」). 김육(金堉)은 「신도비명」에서 “이순신의 몸가짐은 규범있는 학자와 같았다”고 하고, 이식(李植)은 「시장(諡狀)」에서 “최후의 마지막 날에도 규율과 절도가 평소와 같아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순신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부하들의 마음을 움직여 최선을 다하게 한 감화력도 결국은 문인적인 자질을 길러준 유학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규범적인 자세가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 힘이 된 것이다. 손무(孫武)는 “용병을 잘하는 자는 도를 닦고 법을 보전하므로 승패를 가늠할 군정을 만들 수 있다[善用兵者, 修道而保法, 故能爲勝敗之政].”고 하였다(『손자』「군형」). 지휘자가 항상 도덕심을 갖고 부하들을 지휘한다면, 상하간이 화합하여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요컨대 유학의 도덕 정신은 누구나 자신의 도리를 다하게 하는 감화력이 있으므로, 목표달성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2014) 참고인용함.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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