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자의 길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인격수양자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어도 항상 자신을 겸손하게 낮춘다. 이는 자신의 인품을 드높이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공자는 “총명과 예지는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천하를 덮을만한 공은 겸양으로 지켜야 한다[聰明睿智, 守之以愚, 功被天下, 守之以讓].”고 하였다(『공자가어』「삼서」). 겸양은 인격수양과 함께 인간관계를 발전시켜 주는 덕목이므로 항상 자신을 위해 지켜져야 한다. 중국 촉한의 전략가 제갈량은 “예의를 아는 장수는 귀하게 되도 교만하지 않고 이겨도 자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장원』「장재」). 전쟁을 모의하는 장수에게도 군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겸양이 필요한 것이다.

  이순신은 일생동안 분수에 넘치는 행위를 하지 않았고, 항상 근신하는 선비의 모습으로 생활하였다. 그의 어질고 겸허한 모습은 처음 벼슬길에 올랐을 때부터 남달랐다. 1579년 2월 훈련원 봉사(奉事) 재직 시(35세)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신의 후처 딸을 이순신에게 첩(妾)으로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은 “제가 처음 벼슬길에 나왔는데, 어찌 권세 있는 가문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그 자리에서 중매를 거절하였다. 보통사람이라면 기꺼이 수락했겠지만, 이순신은 처음 벼슬에 오른 자로서 권력자에게 의지하려는 것이 마음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여기서 그의 자족하며 부귀에 초연(超然)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통의 세인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권력자에게 아첨하며 부귀를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항상 이 점을 수치로 여기며 늘 경계한 것이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음에도 겸손의 의미가 담긴 다음과 같은 글을 난중일기에 적었다.

  사직(社稷)의 존엄한 신령에 힘입어 겨우 작은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초월하여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을 지닌 몸이지만 세운 공은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입으로는 교서(敎書)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 『계사일기』 9월 16일 이후 -

  자신을 낮추며 임금에게 받은 처우에 대해 매우 과분하게 여겼다. 전쟁업무를 맡은 장수로서 오직 군사들에게 부끄러움만을 느낀다는 말은 선비의 겸허한 표현이다. 공자는 선비의 자세에 대해서 “몸소 실천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行己有恥].”고 하였다. 이순신은 자신이 세운 공로에 대해 자랑하기 보다는 항상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성찰한 것이다. 7년간의 전쟁을 치르면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것은 남다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을 소탕할 수 있는 뛰어난 전략전술도 결국은 그의 남다른 인격수양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손무(孫武)가 “용병을 잘하는 자는 도를 닦고 법을 보전한다[善用兵者, 修道而保法].”고(『손자』「군형」) 한 말의 의미를 한번 더 되새기게 된다.

                                                               이순신의 리더십(노승석, 여해 2014) 참고 인용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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