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화 작업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이 7년간의 전쟁 중에 직접 체험한 사실들을 기록한 진중 일기이다. 친필 초고본을 보면 급박한 전쟁을 치룬 해일수록 필기상태가 심하게 흘려져 있다. 특히 『임진일기』와 『계사일기』, 『정유일기』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큰 전쟁이 일어났던 해에 작성된 일기는 분량이 일정하지 않고 수정과 삭제가 반복되고 누락과 훼손상태가 심하다.

  더욱이 표기방법에서 고유명사의 경우 동음가(同音價)의 한자를 차용한 예도 있다. 원래의 글자와 음이 같거나 모양이 비슷한 글자 중에 쉬운 글자를 차용하여 표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용어에서 직예(直詣)를 직지(直指)로, 인명에서 일(馹)자를 일(一)자로 사용하였다. 이와 반대로 불필요한 획을 더한 경우도 있는데, 유지(有旨)를 유지(宥旨)로, 한산도(閑山島)를 한산도(韓山島)로 표기하였다. 이 모두가 교정 대상이다. 난중일기 초고본의 총 글자수는 75,453자인데, 문제는 이 모두 알아보기 어려운 초서체로 작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조 19년(1795) 정조의 명으로 윤행임과 유득공이 처음 이를 해독하여 『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를 정유동유자(丁酉銅鑄字)로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 원문에는 편집과정에서 일부내용이 생략되고 산정이 더해져 초고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 회장)에서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가 나오게 되었다. 그 후 1960년 노산 이은상이 난중일기 원문을 교정한 교정본을 간행하기도 했다.

  본래 교감(校勘)이란, 판본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교정(校正) 작업이다. 교감이란 말은, 중국 양제(齊梁)시대 때 심약(沈約)의 「上言宜校勘譜籍」에서 유래한다. 이것이 후대에 판본학과 함께 교감학으로 발달하여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근대학자 중국 북경대학의 예기심(倪其心)교수는 “교감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문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存眞復原)이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교감은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을 확정하는 일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초고본을 표본으로 하고 모든 이본(異本)상황을 한눈에 볼 수있는 대교(對校)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필자는 일찍이 전서본 난중일기와 『난중일기초』에 대한 대교작업을 진행하여 2천여 곳의 차이점을 밝히고, 미상과 오독을 바로잡아 170여 곳을 교감하였다. 이 작업에는 반드시 내용에 근거가 되는 문헌고증이 선행되어야 하고, 문장의 문리에 대한 합리적인 이론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 지금의 『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교감의 원리와 방법조차 모르는 비전공자들이 교감본 난중일기를 평가하거나 교감을 운운하고 있다. 임진왜란사에 해박하다고 해서 교감영역까지 과연 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교감학이란 수십년 동안 경전 해독능력을 쌓아야 하는 어려운 학문이다. 더욱이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화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이후 세간에 더욱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편승하여 기본 소양도 없는 이들이 서로 난중일기를 연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렇다보면 선행 연구물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인들의 난중일기에 대한 지대한 관심 속에서 일부 문제점도 보이는 현상에 대해 주의가 요망된다.

                    대표저서 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2014),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2014)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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