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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전쟁의 위기 상황에서도 덕행을 실천하다

노승석의 이순신의 窓

여해고전연구소장 | 고전 및 초서전문가, 이순신연구가. 국내 최초 난중일기를 교감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

[이순신의 窓]전쟁의 위기 상황에서도 덕행을 실천하다
  • 노승석
  • 승인 2020.05.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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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 배려심

  옛 현인들은 인격수양을 하고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경영 원리를 탐구하는데항상 덕행(德)을 실천하는 것을 중시했다. 덕이란, 은혜를 베푸는 미덕으로서 나라의 풍속을 순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체이다. 중국 진(秦)나라 말기의 병법가 황석공(黃石公)이 장량(張良)에게 전수한 천하 통일의 비법도 바로 덕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덕을 닦는 것보다 더 먼저할 것이 없다.[先莫先於修德].” -황석공, 《소서》-

인간사에서 진리와도 같은 덕은 오덕(五德)으로 발전했다. 이 오덕을 유가에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 하고, 병가에서는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이라고 한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덕이란 정치의 시작이다. 정치가 조화롭지 못하면 백성은 그 교화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다.(《공자가어》) 덕은 인간에게 배려심, 도덕심이니, 인간사랑 정신의 근본인 인(仁)의 본질인 것이다.

  학문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정치를 통해 민심을 순화하는 것도 결국은 도덕실천을 위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도덕의 원리는 항상 밑바탕이 되어야 하니, 이는 학문과 교육, 정치, 군사 등에도 두루 필요한 것이다. 역대의 많은 인물들이 위대한 것도 바로 도덕과 관련한 선업(善業)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뛰어난 장수로서 기개를 떨친 이순신도 덕행을 충실히 실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순신의 남다른 동정심과 배려심은 역사에 기록된 일화에서 확인된다. 이순신은 평소 규정과 원칙을 중시할 만큼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지만, 그 내면은 오히려 인정과 동정심이 많았다. 1583년 함경도 건원보(乾原堡) 권관(權管, 종9품) 재직 시 변방의 병사가 부모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가난한 형편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을 내주었다고 한다. 손무(孫武)는 “병사를 자식처럼 사랑해야 함께 죽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러한 모습에서 이순신이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를 알 수 있다.(노승석, 《이순신의 리더십》)

  1589년 12월 이순신이 정읍현감에 임명되어 부임해 가는데, 부인과 자식, 아우, 형수, 조카, 종 등 20여 명의 대가족을 함께 데리고 갔다. 이를 본 어떤 이가 복무규정에 어긋난다며 비난했다. 이에 이순신은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남솔(濫率, 관리가 제한 수 이상의 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의 죄를 지을지언정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조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겠소.”라고 말하였다. 이는 관리의 복무규정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도리가 우선임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이순신의 남다른 도덕심과 인간사랑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이순신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기에 백성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이순신은 전쟁 중 작전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민정을 살피는 일을 소홀하지 않았다. 손무는 “용병술을 아는 장수는 백성의 운명을 책임지고 국가의 안위에 주도자가 된다[知兵之將, 民之司命, 國家安危之主也].”고 하였다(《손자》〈작전〉). 이순신은 군사와 백성의 고충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일기에 적었다.

대저 변방의 중진(重鎭)을 한번 잃으면 그 해독은 심장부에까지 미치게 되니, 이것은 실로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계책으로는, 먼저 전례를 따라 변방의 방어를 견고하게 한 다음, 차츰 문제점을 조사하고 밝히어 군사와 백성의 고통을 구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가장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교감완역 난중일기》 임진년 8월 28일 이후 -

전쟁 초부터 한산대첩과 부산포해전을 치르면서 승리로 이끌기까지 군사들과 백성들은 전쟁의 고통에서 매우 괴로워했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방을 방어하고 군사와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군사들이 불안하면 군사력이 떨어지고, 백성이 불안하면 국가의 기반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특히 전란 중 백성들의 굶주리는 실태를 조사하고 지방 관리의 횡포를 처벌하고 피해가 심각한 지역의 군역을 면제해주었다. 무엇보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해와 고통을 최대한 줄여 민생안전을 도모한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은 작전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였다. 한 군대의 지휘자로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음으로써 목민관의 도리도 다하고자 한 것이다.

 

 

글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순신연구가, 초서/고전전문가)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2판(여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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