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촛불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의 을미년(1595)은 임진왜란 중 명일(明日)간의 강화교섭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있었던 시기였다. 이순신은 지난해 거제도 공격작전에 참전하였으나 별다른 전과를 세우지 못하였다. 연일 초조한 마음에 중원회복을 한 제갈량(諸葛亮)과 안록사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를 생각하며, 하루속히 난리를 평정하고자 고심하였다.

  그 당시의 을미년도 청양(靑羊)의 해였다. 이순신은 을미년 정월 초하루의 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촛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또 팔순의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                                           - 을미일기, 1월 1일 -

  전쟁은 이순신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고, 조명일(朝明日) 삼국이 풀어야 할 문제이었다. 그러나 명나라와 일본과의 협상이 순조롭지 않아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한계 상황에서 이순신은 설날 새벽 나라 걱정에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의 건강도 염려되었다. 설날 새벽을 노심초사하며 뜬 눈으로 을미년 새해를 맞은 것이다.

  이순신은 전쟁으로 맏아들 이회(李薈)의 혼례를 미루어 오다가 을미년 정월 13일에 혼례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은 전날 부친을 꿈속에서 뵙게 되었는데, 그때 부친이 이회의 혼사에 대해 언급하였다.

  삼경(三更)에 꿈을 꾸니 선군(先君)께서 와서 분부하기를 “13일에 회(薈)를 초례(醮禮)하여 장가보내는 것이 알맞지 않는 것 같구나.비록 4일 뒤에 보내더라도 무방하다.”고 하셨다.이는 완전히 평소 때와 같아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 을미일기 1월 12일 (일기초)-

  이순신이 꿈속에서 뵌 부친의 모습은 너무도 생생하여 생시 때와 같았다. 꿈을 깬 뒤에 꿈의 대화를 회상하니 그리운 심정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 후 이순신은 실제로 부친의 말씀을 따라 아들의 혼삿날을 8일 뒤로 연기하였다. 비현실적인 꿈속의 분부일지라도 자신에게는 그것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순신의 어버이에 대한 남다른 효심을 알 수 있다.

  이 부친과의 꿈이야기는 기존 난중일기에는 없고, 2007년 필자가 발굴한 『충무공유사』의 「일기초」에 나온다. 새로운 『을미일기』 는 모두 30일치인데, 내용은 주로 개인적이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정조 때(1795년) 『충무공전서』를 간행할 때 이러한 내용들이 왜 제외된 것일까. 물론 이순신의 후손들이 훗날 이순신의 업적 평가에 악영향이 미칠까봐 염려되어 고의로 제외시켰다는 견해도 있다. 휴전기라 할 수 있는 을미년의 일기에는 이순신이 그간 전쟁으로 느끼지 못한 감정을 적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점에서 『을미일기』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기록물이다. 그러나 이『을미일기』원본이 후대에 분실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을미년 설을 맞아 우리도 새벽촛불을 밝히고 국가의 안녕과 부모님의 강령을 기원하며 자신의 소원을 빌어 보자.

대표저서 : 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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