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 해결의 실마리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일상생활에서 남이 보든 안보든 매사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성실하게 임하면 남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을 것이다. 공자는 “선비는 금옥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성실과 신의를 보배로 여긴다.”고 하였다(『예기』「유행」). 성실과 신의는 수양하는 이가 선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실천덕목이다. 황석공은 “신묘함이란, 지극한 정성보다 더 신묘한 것이 없다[神莫神於至誠].”고 하였다(『소서』「본덕종도」). 지극한 정성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신묘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한 것이다.

  제갈량은 “사람에게 있어서 충심은 물고기에게 연못이 있는 것과 같다. 물고기는 물을 잃으면 죽고 사람은 충심을 잃으면 흉해진다[人之忠也, 猶魚之有淵, 魚失水則死, 人失忠則凶].”고 하였다(『제갈량집』「병요」). 인간의 충심은 물고기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물과도 같고, 충심이 없는 사람은 머지않아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순신은 전쟁 중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장수로서 충심을 잃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였다. 임진년 4월 왜군이 조선의 내륙 진입에 성공하고 마침내 서울에 육박하게 되자, 이순신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주력했다. 경상도 연해 군현의 군사들이 모두 도주하고 성곽이 함락된 상황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원컨대 한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범의 소굴을 공격하여 요망한 기운을 다 쓸어버리고, 나라의 수치를 만분의 일이라도 씻고자 합니다.            -『임진장초』, <부원경상도장(赴援慶尙道狀)> -

경상 수군들이 적의 침공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요인은 모두 해상방어의 실패에 있었다. 이순신은 이 무너진 기세를 만회하기 위해, 성패를 장담할 수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 결사적인 다짐으로 전쟁에 임한 것이다.

  전쟁 중에는 특히 부하들을 동원하여 식량비축에도 힘썼다. 상중(喪中)인 정사준(鄭思竣)을 광양현(光陽縣) 전탄(錢灘)의 복병장으로 파견하고, 심지어 선비 이의남(李義男)과 함께 의곡(義穀)을 모아 의주(義州)에서 피난 중인 선조(宣祖))의 행재소(行在所, 왕의 임시처소)에 보내기도 하였다. 여기서 국난 중에 임금을 위해 식량을 보내는 이순신의 충심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왜적을 공격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한편 내륙을 수비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승병과 의병을 모집하였는데, 순천의 승려 삼혜(三惠)를 시호별도장, 흥양의 승려 의능(義能)을 유격별도장, 광양의 승려 성휘(性輝)를 우돌격장, 광주의 신해(信海)를 좌돌격장으로 임명하고, 고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들을 전남 구례의 석주(石柱)와 도탄(陶灘), 두치(豆恥)에 파견하자, 한 달 동안 4백 여명이 모였다. 이처럼 조선부대에 민간병력을 충원하여 전쟁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계사년 2차 견내량 해전 당시 왜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왜군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며 침착하게 대처하였다. 한 순간 오판하면 적의 함정에 말려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저의 생각으로는 요로를 굳게 지켜 편안히 있다가 피로해진 적을 기다려서 먼저 선봉을 부시면 비록 백만의 무리도 꺾여 도망갈 것입니다. 작년에 적이 섬멸 당한 한산바다에 진치고 기다렸다가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공격하기를 죽음으로 맹세했습니다. - 『임진장초』, <축왜선장(逐倭船狀)>-

  이순신은 그간의 전쟁경험으로 도주하는 왜선은 절대 끝까지 추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왜군의 속셈을 알았기 때문이다. 후방 수비에 힘쓰며 왜군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은 결과, 적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군민에게 농사를 가르쳐 곡식을 저축하고, 어염(漁鹽)의 이익을 증대시겼다. 이 때문에 군대에는 군량보급이 끊긴 적이 없었고, 남쪽 백성들조차 이에 의지하며 명맥을 유지했다.(「충무공유사」) 남구만(南九萬)은 “이순신이 먼 앞날을 내다본 계책이 전쟁에서 승전 요인이 되었고, 국가를 진작시킨 방법이 되었다.”고 하였다(『고화도유허비』). 앞날을 예견하기 힘든 암담한 상황에서도 미래를 관망한 그의 원대한 계책은 항상 나라를 수호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이 모두가 국난극복을 위해 한결같은 정성을 기울인 결과이다.

    노승석 대표저서

    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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