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는 것과 버릴 것 냉철한 경제 논리로 풀어라

과도기라는 상황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숨 고르기 순간이다. 그런데 기업에게도 이러한 현상은 발생될 수 있다. 이러한 시기를 정체기로 보고 있다.
기업의 성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파르게 오르다가도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를 맞을 때도 있다. 예를 들자면 코닥필름과 후지필름은 카메라 시장이 발달 할수록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메라에 필름이 꼭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답안이 나와서일까. 코닥은 자신들이 먼저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서도 디지털 카메라 생산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필름시대는 영원불멸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잔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필름은 디지털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듯 시대는 급 변화하고 기업은 변화하는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한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서바이벌을 벌일 수밖에 없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이 ‘관성(Inertia)에 빠지지 않고 일관성으로 재기에 성공한 기업’보고서는 무한경쟁 시대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해답을 일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성공이 기업의 무한담보는 아니다
소니가 데뷔 35년 된 ‘워크맨’의 신 모델(ZX1)을 출시했다. 지난해 말 일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초 다른 아시아와 유럽지역으로 공급을 확대하면서 과거 성공신화 재현에 나서고 있다. 이 고음질 음원 재생기기는 프리미엄 틈새시장을 겨냥하고 있어 소니의 만성적자를 해결하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나마 한 때 IT시장을 호령했던 소니의 부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소니와 같이 한때 고성장 가도를 달리던 기업도 쇠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더구나 한 번 꺾인 성장세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비단 소니만이 아니다. 과거에 성공했던 많은 기업들이 부진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소수만이 부활에 성공했을 뿐, 나머지 대다수 기업들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 기인할까? 많은 원인이 분석되고 회자되고 있다. 특히, 그 중 과거 성공 요인에 대한 상반된 접근이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위기에 빠진 기업이 자신을 간판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강점만큼은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벗어 던져야 할지에 대한 찬반논란이다.
사전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재기에 힘쓰거나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한 기업의 최고 경영진들이 끊임없이 대답을 요구 받는 질문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이다.

재기를 가로막는 ‘성공의 함정’
크게 성공한 기업일수록 회복이 어려운 이유는 성공 체험이 축적된 기업일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패턴에 안주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직 이론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James March) 교수가 말한 ‘성공의 함정(Success Trap)’, 즉, 조직관성(Inertia)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소비자 니즈나 외부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이전의 성공 방정식과 핵심역량에만 집중하다가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성공 기업을 서서히 몰락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재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방해물로 작용한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놓고도 단기적 이윤을 위해 주력인 필름사업에 집착하다가 결국 후발 기업에 밀려 시장 지배력을 상실한 것이 전형적인 케이스다.
피처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을 외면하다 추락을 거듭한 것도 성공의 자만심으로 과거에 안주하려는 관성이 혁신을 더디게 한 대표적 사례이다.

정체성 상실은 기업을 위험에 빠뜨린다

 

그렇다고 변화 그 자체가 재도약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성급한 변신을 추구했다가 과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자신만의 존재 이유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만을 낳을 수도 있다.
워크맨 신화로 시작해 가전업계의 대표기업이 되었던 소니의 추락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IT하드웨어의 강자로 군림하던 이 회사는 단단함 내지 내구성으로 대표되는 제조사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니의 정체성인 ‘소니다움’이었다. 성공가도를 줄곧 달려와 자신감이 넘쳤던 것일까? 소니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 하면 하드웨어 기술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너무 서둘러 콘텐츠 사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995년 소니의 4대 회장인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강한 기업을 목표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소니의 강점분야였던 TV의 미래 준비는 뒷전으로 밀렸다. LCD나 PDP 등은 외부에서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고 판단해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하고 투자시기도 놓쳐버렸다. 대신 미국 콜롬비아 픽처스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인수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과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자 재무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하드웨어의 진화는 빠르게 일어났지만 자금 압박으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축소가 불가피했다. 결과적으로 소니는 자부심이던 ‘기술력’까지 상당부분 잃게 되었다. 고객들에게 소프트웨어를 덧붙여 새로운 소니로 인정받기도 전에 제조사로서 소니다움을 놓쳐버렸다.
이제는 고객의 마음속에 이전과 다른 소니다움으로 자리 잡아야만 부활이 가능한 힘겨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성공 요인이 재기의 버팀목이 되어준 기업들이 있다.
품질경영으로 대표되는 도요타,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상징하는 디즈니, 장난감 블록 하면 떠오르는 레고,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고수하는 애플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때 업계를 대표하는 성공 기업으로 영예를 누렸던 이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쇠락의 위기를 자신만의 존재이유와 강점을 기반으로 극복해 낸 기업들이다.

초심은 기업도 살린다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승승장구하던 도요타도 위기를 피해갈 순 없었다.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차량 안전결함에 따른 천만 대 규모의 리콜사태, 거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의 악재 속에 추락했다.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도요타의 자존심인 품질에도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도요타는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이자 전 세계 자동차 업체 판매량 중 최고 기록인 998만대를 판매하며 부활의 날개를 완전히 펼쳤다. 때마침 엔저 환율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재기의 주요 동력은 ‘품질경영’이라는 창업정신으로의 복귀에서 찾을 수 있다.
위기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도요타 경영진은 자신들이 성공에 도취되어 ‘품질’이라는 가치 대신 생산대수 같은 성과에 과도한 집착을 보여 왔음을 인정했다.
일차적으로, 부품을 더 규격화하고 관리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심지어 건물 엘리베이터 운행 시간까지 축소하는 고강도의 비용절감 노력이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게 ‘도요타다움’이라는 미션을 다시금 강조하며 모든 경영활동을 품질이라는 가치 중심으로 재 정렬 시킨 결과이다.
‘재미있게 놀다’라는 뜻의 덴마크어(leg godt)에서 회사 이름이 유래된 레고는 아동용 완구의 대명사로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해 2000년까지만 해도 세계5위의 완구회사로 평가되었지만 2003년에 이어 2004년에 대규모 적자에 빠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다음해 실적 전환에 성공해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급기야 올해 상반기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 장난감 회사에 올랐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레고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액션 피규어나 비디오 게임 같은 분야에 진출해 시장점유율을 늘리려 했다. 아이들이 점차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끈기 있게 브릭 쌓기를 하는 어린이들에 얽매여서는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판단에서 새로운 제품 라인을 확대해 나갔다.
미소를 머금은 노랑머리 캐릭터 대신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레고의 상징은 미군 복장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존의 핵심 고객층인 아이도 그리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레고를 사주던 부모도 떠나기 시작했다.
레고가 이 위기에서 그토록 빨리 반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애초의 존재 이유에서 해답을 찾은 데 있다. 미래를 만들어 나갈 아이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성공한 회사임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지난겨울 전 세계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던 ‘겨울왕국’의 대성공으로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왕국의 위상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디즈니의 역사에도 암흑기가 있었고 자신의 핵심자산을 회복함으로써 지속성장을 누리게 된 것이다. 창업자 사후, 확장된 사업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핵심역량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디즈니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 수익은 감소하고 디즈니랜드의 입장료도 정체되고, 캐릭터들의 인기가 차츰 시들해지면서 캐릭터 라이선스도 떨어졌다.
1984년 해체까지 거론되던 디즈니의 CEO로 부임한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는 위기의 타개책으로 월트 디즈니가 1957년 고안한 비전 맵에 기반 하여 핵심자산인 애니메이션에 다시 집중했다. ‘만화 영화에 올인하라!’라는 사업 전략으로 인어공주(1989)를 시작으로 디즈니는 암흑기를 마감하게 된다.

 

재기에 성공하려는 기업이 과거의 성공 요인을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지 아니면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은 직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이유가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패턴에 안주한다면 부활은 고사하고 생존마저도 위협받게 될 수 있다.
반면 앞서 소개한 기업들은 각각 품질, 브릭, 애니메이션, 디자인 같은 자신을 대표하고 고객도 공감하는 ‘자기다움’과 ‘존재이유’를 되찾으며 성장세를 회복한 사례들이다.
“우리 기업이 사라지면 세상에 구멍이 생기고, 우리 기업을 대신할 다른 기업을 찾지 못한 고객들이 우리를 그리워할까?” 이 질문으로부터 우리 기업이 세상에 필요한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일관되게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떨쳐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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