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부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질 경우 정부 개입 필요”

“한국은 경제성장에 대한 성공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그 수준의 경제성장률이 영구히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미 한국은 꽤 많은 부를 축적했고, 경제성장률은 낮아져, 앞으로 자본수익률이 더 중요한 수익 요소가 될 것이다. 불평등 문제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장치와 정책으로 제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필요하다면 한국도 조세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18일부터 2박 3일간 한국에 방한한 <21세기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가 했던 말이다.
토마 피케티 교수가 지난해 4월 프랑스에서 발간한 <21세기자본>은 소득 불평등과 부의 집중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부의 분배’ 논쟁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으로 ‘피케티 신드롬’까지 만들어가고 있다.

토마 피케티와 <21세기자본>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1971년 프랑스 인근의 클리시에서 태어나 프랑스 고등사법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뒤 22세에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연구원과 런던 정경대에서 부의 재분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2세의 젊은 나이로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경제학을 3년간 가르쳤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2000년부터 파리 경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1세기자본>은 크게 ‘소득과 자본’,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불평등의 구조’, ‘21세기의 자본 규제’라는 네 부분으로 나눠, 소득불평등과 부의 집중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했다.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소득과 부의 동학을 연구하기위해 프랑스와 미국은 물론이고 20개국의 지난 3세기 동안의 경제적, 역사적, 지리적으로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피케티 스스로는 평가했다. 
<21세기자본>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경제적 분석이 아닌 괴상한 이데올로기적 장광설에 불과하다”고 했고, 뉴욕 타임즈에서도 “너무 이상주의적인 정치 발상”이라는 서평을 내놓았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21세기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극찬했고, 경제 칼럼니스트 스티븐 펄스타인 역시 “이론과 수학적 모형이 대세가 돼버린 최근 경제학계를 넘어서는 경제사의 쾌거”라는 평과 함께 “지적인 역작”이라는 찬사를 했다. 또한, 포춘지에서는 “<21세기자본>이 경제 논의에 있어서 논의의 초점을 불평등의 심각성에서 해결책으로 옮겨 놓았다”고 평가했다. 피케티의 <21세기자본>은 경제, 정치, 언론계에서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서로의 주장도 극과 극이다.

 

쿠즈네츠 곡선의 비판과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
<21세기자본>의 논쟁의 중심에는 쿠즈네츠 곡선에 대한 비판이 있다. 쿠즈네츠의 곡선은 사이먼 쿠즈네츠의 1950년대 주장으로 소득이 아주 낮은 저소득 상태에서 소득분배는 평등하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득불평등 정도가 높아지며, 이후 경제가 하향세를 나타낼 때, 다시 부의 분배가 개선된다는 것이다.
쿠즈네츠는 경제가 악화되고 개선되는 과정은 지극히 시장의 힘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동시에 모두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계층에서 먼저 성장이 일어나고, 이것이 불평등을 초래한다. 이후 어느 정도 성장이 이뤄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소득분배가 상향평준화가 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러한 쿠즈네츠의 주장을 <21세기자본>에서 정면으로 반박한다. 피케티는 쿠즈네츠의 곡선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의 소득불평등이 감소했던 시기가 1914년에서 1945년 사이를 지적하며 이 시기 소득불평등의 급속한 감소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쟁이 불러온 경제적, 정치적 충격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결국 쿠즈네츠의 이론을 ‘대체적으로 냉전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논쟁은 피케티가 주장하는 불평등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피케티는 불평들의 근본적인 이유를 r>g라는 간단한 부등식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r은 ‘연평균 자본수익률’로 자본을 통해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등의 자본을 통해 생성된 이득을 뜻한다. g는 ‘경제성장률’로,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이다. 즉, 기존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이익이 노동, 생산 등으로 만들어진 이익보다 크다는 의미이다. 이는 불평등의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해서 자본수익률 'r'이 경제성장률 'g'보다 높은 상황이라면, 자본을 통해서 얻은 소득의 일부만 저축해도 전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이는 거의 필연적으로 이미 쌓여진 자본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것이고, 자본의 집중도도 높은 수준에 이른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불평등의 근본적인 이유는 과거에 쌓인 자본의 수입이 현재의 노동이나 생산의 수입을 압도할 만큼 부를 창출하기 때문에 불평등의 격차는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r>g 부등식은 쿠즈네츠의 곡선의 낙관론을 비판하며 오히려 더 커질 불평등의 구조를 설명한다.
 
피케티는 이밖에도 불평등의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정치적 힘의 개입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연간소득이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가 넘을 경우 80%의 세율을 부과한다면 미국의 경제성장을 둔화시키지 않고, 경제적으로 무익한 행위를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성장과 과실을 널리 분배할 수 있는 누진부과세를 제안한다” 또한, “부유층 자산에 매년 5%에서 10%까지 세율을 부과해야한다는 내용의 글로벌 소득세도 제안한다. 이와 함께 상속 증여세를 강화하고, 불평등을 비판하는 인성의 교육과 기업 감시를 위한 회계 교육을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에 많은 논란이 있다.

피케티가 한국사회에 남긴 메시지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계속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지난 8년간 저소득층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올라갈 확률이 2005년~2006년 31.7%였던 반면 2011년~2012년은 23.5%까지 하락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전 세계 3위에 해당한다.
노동연구원이 지난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임금소득’과 ‘하위 10%의 임금소득’의 격차도 4.85배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 중 세 번째로 높다.

이런 현실에서 피케티가 한국에 방문해 제안한 내용들은 의미가 있다. 피케티는 국내의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은 성공적 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부의 불균형은 더 심각한 상태다”라고 했다. 그는 최근 국세청 자료를 활용해 한국의 소득 집중도를 연구한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논문을 거론하며 “한국의 소득 집중도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과 유럽보다 빠르게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 같다. 한국이 과거와 같은 5%대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문제된다. 앞으로 5~10년만 지나도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져서 자본수익률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특히 자본 축적이 늘면서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교육, 누진적 소득세, 노동시장 등의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정부가 추진 중인 담뱃값 인상 등의 조세정책들은 불평등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담뱃세 등의 간접세는 주 소비층인 중산층에 영향을 준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 지금은 과도한 부에 대한 누진세 부과가 낫다”며 “현행 소득세 체계는 부자들의 부만 불려왔다. 지난 30년 간 최상위계층에 대한 소득세율 상한선이 계속 낮아진 것은 특히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포용적인 교육제도는 소득 불평등을 낮출 수 있지만 소수를 상대로 하는 엘리트 교육의 강화는 소득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며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높아 시민들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까지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 교육 형평성을 높이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피케티는 <21세기자본>에서 부의 격차는 합리적인 수준까지만 벌어져야 하고, 부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질 경우에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케티 신드롬’은 그동안 경제 성장에만 집중했던 한국사회에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번 ‘피케티 신드롬’이 잠깐의 이벤트로 끝날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의 대한 국민의식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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