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 수익을 위한 경영 프로세스는 실패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현 시점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일본은 2년째 엔화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경기부양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고,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올해 7% 이내에서 고공행진을 마감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달러화 강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EU국가들도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환율 끌어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이 수출을 하려해도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고, 중국의 저가정책으로 인한 가격경쟁에서도 답답한 상황이다.
내수시장도 냉동상태에서 해동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 내수 시장을 위주로 성장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타이틀이 걸렸을 만큼 오랜 시간 장기불황에 허덕이면서도 미래를 바라보고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구성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오히려 안정화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는 만큼 현재의 일본은 주변 국가들과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을 정도이다. 일본이 우려와는 달리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면에는 바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일본의 장기불황과 기업의 충격
일본기업 수익이 최근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장기불황을 견디면서 수익구조를 개선시킨 일본기업의 전략적 특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오히려 장기불황으로 인한 탄탄한 내성의 결과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이 경험했던 수준까지 악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성장세가 장기적으로 볼 때 낮아질 가능성이 있어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기업이 고민했던 전략들이 해법노트처럼 보여지고 있어 주목되는 이유일 것이다.
일본기업의 총자산 이익률(ROA)은 지난 1960년대 이후 연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그러나 장기불황과 함께 1990년대에는 수익악화 추세가 한 단계 심화되기도 했다.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제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비제조업간의 수익률 격차가 다소 줄어들었는데, 이는 아베노믹스의 효과로 인한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장기불황은 경제성장세의 하락과 함께 기업의 매출 부진을 초래하여 일본기업의 수익을 악화시키지만 이러한 수익 악화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저물가의 결과물로 저금리가 발생하여 일본기업의 구조조정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미진했다.
일본기업은 과거 고도성장의 결과로 축적된 자산 등의 여유로 저금리 구조 속에서 투자를 억제하고 구조조정도 미루는 버티기 전략을 대체적으로 선택했었다. 이것은 일본식 종신고용에 대한 관행이 구조조정을 미루는 역할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이 저성장, 저금리, 저수익 경영의 장기화로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부담하여 투자를 하는 경영이 후퇴함으로써 노후 설비의 과잉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이것이 경제 전체의 성장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장기불황의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기업의 폐업도 창업도 부진한 가운데 과잉설비의 누적으로 인해 지속적인 물가 하락인 디플레이션 현상을 촉진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업의 저수익과 저성장의 악순환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최근 아베노믹스는 성장전략에서 일본기업의 신진대사와 수익성 향상을 중요한 전략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혁신 능력 저하
2004년 일본은 고이즈미 내각의 개혁에 따라 일본기업은 그동안 안고 있던 구조조정 카드를 내 놓게 된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ROA도 회복세를 보이게 되지만 일본식 고용 관행이 무너지면서 연봉제와 비정규직 활용이 높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일본기업의 혁신능력은 떨어지고 물가하락 속에서 끊임없이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고용구조가 불안정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기보다 안정적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는 일본기업이 고수익을 유지하는데 큰 장애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요인이 된다.
한 예로 최근에 디플레이션기에 각광을 받은 저가격 서비스 유통업체들이 경기회복과 함께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어려움을 겪는 일도 발생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키야’라는 저가격 스키야키 체인점인 것이다. 이 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가 대량 이직함으로써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고 운영되는 가게조차 유지가 안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강점 분야에 주력하면서 자체 기술력을 높이고 혁신제품의 경쟁력을 높여 매출을 확대한 기업은 결과론적이지만 높은 성과를 보이며 안정적인 기업유지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불황 속 해법이 달랐다
일본의 장기불황이 20년 정도 계속되면서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기업의 경영전략 포인트도 시기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주식과 부동산 버블 붕괴를 계기로 장기불황 초기로 보고 있는 1990년대 초는 기존의 일본식 경영에 대한 자만심이 있다 보니 오히려 본업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당시 일본기업은 기술력에 대해 믿었고 제품 혁신을 통해 글로벌하게 주도하겠다는 입장에서 DVD, MD, 저연비 차량 등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경제의 부진 장기화와 엔고 압력이 강화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식 경영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는 가운데 제조업체의 생산 기반 해외이전도 러시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전략은 지속적인 내수 부진과 엔고 속에서 일본 제조업은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기반을 이전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경제가 극도로 위축되어 물가하락세 심화와 더불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식 경영을 탈피하고 글로벌 스텐다드 도입에 주력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은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건비 절감에 주력했지만 오히려 물가하락을 부추기면서 수요와 매출감소로 이어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이 때 금융 부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미토모 그룹의 중심인 스미토모은행과 미쓰이 그룹의 미쓰이은행이 합병하는 등 6대 기업집단의 틀을 뛰어넘는 주요 기업 간 합병으로 일본 산업의 재편성이 진행됐다.
금융부실 문제가 극복되면서 2000년대 중반에서 리먼쇼크까지는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의 엔저 유도 정책에 힘입어 일본기업의 수익률이 크게 개선되면서 일본 산업계는 제조업의 재강화에 주력하게 된다.
일본기업은 한국기업의 전략도 분석하고 대비하여 전기전자, 자동차 분야 등에서 투자와 수출을 늘리는 확대 경영에도 주력하는데 그 중 평판TV 분야에서 한국 및 대만 기업과 경합하면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파나소닉의 대규모 PDP패널 생산 투자, 샤프의 LCD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기업의 엔저를 활용한 투자 확대전략은 근본적인 경쟁력의 강화로 연결되지 않아 파나소닉과 샤프의 대형 공장이 완공 당시에는 거의 가동하지 못할 정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의 경기침체, 동일본대지진의 충격으로 일본기업은 크게 위축되나 2012년 말에 등장한 아베 정권에 의한 경기회복, 엔저 가속화로 반전이 되면서 수익 중시 경영에 주력하게 된다. 과거 엔저기와 같이 저가 수출 확대에 주력하거나 기존 제품의 투자 확대에 나서기보다는 해외거점의 지속적인 확충과 차세대 분야에서의 일본 본국 투자에 주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화한 일본기업으로서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 공장의 부품 및 소재공급이 중단되면 글로벌 생산체제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를 경험함으로써 지금까지 억제했던 핵심 소재 분야의 해외생산에도 나섰다. 일본기업들은 비교적 전력비용이 저렴한 한국에도 진출해 안정적 생산설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불황기를 극복한 기업들
장기불황으로 인해 수많은 일본기업들이 문을 닫아야 했고 그로인해 일본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역경을 이겨낸 기업들을 보면 근시안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여 운영되기보다는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기본으로 단기적으로 매출 극대화도 꾀할 수 있는 전략이 상당부분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을 활용한 1인 점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소고기 덥밥 체인 ‘젠쇼’는 한 때 급성장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일본경기의 회복과 함께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영업점을 휴업해야 하는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유니클로는 저가격 의류로 디플레 시대에 크게 도약한 이후 신소재를 활용하거나 베이직한 디자인이 고령층의 패션에도 활용되는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나가면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마노는 장기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 이후 경주용 및 산악용 자전거 부품 시장을 개척하면서 매출과 수익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1980년대 자전거의 변속 레버와 변속기, 체인, 기어를 일체화된 시스템을 개발하여 변속기 조작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1991년에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도 핸들에 있는 레버를 이용해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자전거 시장의 표준 기술로 도약해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획득하게 된다.
시마노는 제품개발을 뒷받침하는 기반기술을 자체적으로 강화하여 확실한 차별성을 추구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독보적으로 빛을 낸 기업도 있다. 도쿄디즈니리조트 등을 운영하는 오리엔탈랜드는 불황 속에서도 고객가치의 실현으로 압도적인 집객력을 과시하며 레저업계에 독보적인 실적을 구가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대부분의 일본 내 우량기업들이 실적을 하향 수정한 것과는 달리 매출을 전년대비 10% 상향 수정하는 것은 물론 닛케이지수가 1만8,000엔 대에서 8,000엔대로 크게 하락한 가운데서도 실적에 비례해 오히려 주가를 상승시키는 등 당시 시장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련의 마법 같은 일을 발생시켰다.
매년 양질의 새로운 어트랙션과 퍼레이드, 다양한 이벤트를 도입해 고객이 다시 찾아도 새롭고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게 비현실적 이상세계를 실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등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창출하면서 불황을 모르는 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쿄디즈니리조트에 근무하는 종업원의 90%는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고용형태와는 무관하게 경험에 따라 직위와 권한을 부여해 개개인이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 고객만족을 끌어내는데 주력한 것이 가장 핵심적인 성공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눈여겨 봐야할 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불황의 초기 상황과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에 비해 1인당 소득이 당분간 상승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잠제성장 능력의 하락세가 일본에 비해 완만한 편이다. 더욱이 일본 장기불황의 계기가 된 부동산 버블 붕괴와 금융부실화 가능성도 낮은 편이라 장기불황의 탈출구는 곳곳에 열려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시점인 만큼 장기불황기를 극복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의 극복 포인트는 다양한 해석과 시사점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우선 통상적인 원가 절감 노력이나 저가격 제품으로 불황을 극복하는 전략은 단기적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있으며, 축소 균형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거시경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신시장은 국내 수요의 창출과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도 가능한 만큼 근본적인 가치에 뒷받침된 신시장 개척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자사고유의 강점을 연마하여 기술 및 경영 정보의 보안 강화, 원천적으로 모방하기 어려운 개별화된 역량을 연마하는 전략을 사회와 기술의 트렌드 변화에 맞추면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적인 변화를 보이면서 트렌드에 맞게 고도화하고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경영의사 결정을 뛰어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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