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에 부흥하지 못하는 수출과 내수 소비 ‘첩첩산중’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를 괴롭혀 왔던 엔고가 불식되고 주가는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정체되던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서고 디플레이션 위협에서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 2분기 소비세 인상 이후 소비가 급락하고 성장세가 꺾이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는 일본은행과 정부가 아베노믹스의 흔들림 없는 추진의 의지 특히 인플레이션 유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시장은 큰 폭의 주가 상승과 엔화 하락으로 화답했다.

시작은 일본을 춤추게 했다
아베노믹스가 초반에는 성공하는 듯 했지만 앞으로가 문제이다. 엔저에도 수출은 살아나지 않고 있고 소비 수요를 뒷받침해야 할 실질임금은 상승하지 않고 있다. 규제완화, 법인세 감세, 노동시장개혁, 지방경제 회생 등 성장전략의 효과는 아직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없는 상태이다.
지난 2012년 12월 말. 제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성장전략이라는 세 가지 정책들을 축으로 이루어진 아베노믹스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중 성장전략은 시작 단계이지만 일본 경제에는 그동안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제 재생이라는 목표에 상당히 다가서는 성과들이 나타났다.
그 시작은 내각이 발족하기도 전인 2012년 10월, 현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되면서부터이다.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책에 대한 기대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일본 경제를 괴롭혀왔던 엔고가 엔저 추세로 전환되고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 2년 동안 엔화 가치는 1달러당 78엔(2012년 평균)에서 올 10월 108엔으로 27.8% 절하되었으며 닛케이지수는 같은 기간 8000선에서 1만6000선으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내각이 발족된 뒤 지난해 2월 경기부흥을 위한 대규모 추경예산이 편성됐고, 그 해 4월 신임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가 전례 없던 대규모의 금융완화를 개시함에 따라 성장률 회복과 인플레이션 기대 형성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 2012년 2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던 일본경제는 지난해 연간 1.5%의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 경기 회복과 맞물리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했고, 최근 소비세 인상 효과를 제외한 1% 수준에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엔저로 수출과 해외 영업에서 벌어들인 외화의 엔화 가치가 높아지는 한편 내수가 회복세를 나타내자 기업 실적도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수익 증대는 설비투자 증가를 가져왔고 올 2분기 이후 소비가 부진함에도 선행지표인 기계수주액이 6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는 등 설비투자는 견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가 진짜다
이처럼 뚜렷한 성과를 거둔 아베노믹스이지만 엔저와 추경의 효과가 약화되고 특히 지난 4월 소비세 인상의 역풍이 예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자 그에 대한 회의론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2분기 성장률에 관한 보고가 있은 후 지난 8월 모건스탠리 MUFJ는 보고서를 통해 ‘아베노믹스가 난관에 부딪쳤다(Abenomics is in Trouble)’고 결론을 내리자 일본 내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던 일본 경제는 올해 1분기에 소비세 인상을 앞둔 소비수요의 일시적 확대로 전분기 대비 6% 성장하면서 반등했지만 2분기에 다시 소비세 충격으로 -7.1%라는 예상보다 큰 경기 위축을 경험했다.
산업생산은 하락추세를 멈추고 9월 들어 전월대비 2.7% 상승해 바닥을 치고 회복되는 모양이지만 가계 부문의 소비는 9월에도 전년 동월대비 5.6% 감소하여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같은 소비부진은 그 폭에서도 1997년 4월 소비세율이 3%에서 5%로 인상되었을 때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소비부진의 배경에는 실질임금 하락이 있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고용환경이 개선되었지만 비제조업 또는 시간제 근로자 위주로 고용자가 늘어나면서 평균임금이 물가보다 더디게 인상되어 실질임금은 개선되지 않았다. 일본 정책당국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지난 4월 소비세 인상으로 하락이 더욱 두드러져 개선 전망도 약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뚜렷하게 확대되지 않고 기업 수익 개선에서 대기업, 중소기업 간에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아베노믹스 비판자들의 지적 대상 중 하나이다.
비판자들이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대기업들은 수출물량이 늘지 않더라도 엔화가치 하락으로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일본 내에서 사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채산성 악화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수출 물량 부진은 주로 수출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의 수익 개선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정부의 조사 결과에서도 자본금 10억엔 이상의 기업들은 엔화가치 하락과 함께 영업이익률이 급속도로 개선된 데 비해 1억엔 이하의 중소기업들은 수익 회복세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만한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성과마저 위협받는 상황도 나타났다. 소비세 인상 효과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 이후 조금씩 하락하여 9월에는 1.0%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유가하락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작용했지만 1%가 무너지면 인플레이션 기대를 되살리기 어렵다는 우려도 확산되었다.

아베노믹스에 힘을 실어 준 일본은행

 

지난 10월말의 금융완화 확대는 이처럼 시장에서 확산되어 가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하고 기존의 성과를 지속, 확대시키기 위한 발 빠른 개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행은 물가상승세 둔화로 시장에서 추가 금융완화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기 전에 선행적으로 정책을 발표함으로써 뚜렷한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엔화 가치는 110엔대로 하락했고 주가는 1만7000선에 다가설 정도로 상승했다. 같은 날 발표된 연금기금을 운용하는 GPIF의 주식투자비중 확대 소식도 주가상승에 한 몫 했다. 일단 아베노믹스에 다시 활기가 도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이번 금융완화 확대 규모는 지난해 4월 금융완화 도입에 비하면 소폭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책당국이 성장전략과 같은 근본적인 경제 재생정책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통화정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유지시킴으로써 초기 단계인 성장전략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 기간에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성장전략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거시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융완화 확대는 내년 10월 소비세 추가 인상안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아베 내각을 일본은행이 자극 또는 측면 지원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재정 안정성을 중시하여 예정대로 인상을 주장해 온 일본은행과 구로다 총재는 과감한 결정을 통해 아베 내각에게 소비세 인상의 여건과 명분을 마련해 주면서 동시에 과감한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는 단기간에 인상적인 효과를 보여주면서 일본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리스크 요인 또한 만만치 않다. 빠른 시일 내에 성장전략 효과가 나오고 거시경제의 선순환이 살아나지 않고 재정지출과 양적완화로 연명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책적 운신의 폭은 좁아질 것이라고 류상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전망을 밝혔다.

조성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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