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장 확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연두교서에서 국가 수출 진흥전략(National Export Initiative)을 발표하며 미국은 지난 몇 년간 제조업 활성화와 수출 증대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2014년 1월 10일 중국정부는 지난 2013년 무역통계를 공개하며 중국이 교역량 4조 달러를 돌파하며 미국을 추월해 처음으로 세계 최대 무역국이 되었다고 발표, 이후 2월 미국이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중국의 추월은 미국 내에서도 다소 예견된 일이었지만, 예견된 일이 현실이 되자 충격과 함께 미국이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  

중국을 견제할 미국의 경제정책, TPP
이후 지난해 4월 세계은행은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 PPP)전망을 발표했다.
PPP는 국가 간 환율이 각국 구매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두 개의 국가에서 같은 양의 상품을 구매할 때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환율이나 물가 등을 감안한 국가의 실제 경제력을 따지는 데 활용되며, 일반적으로 물가가 싼 개발도상국에서 PPP기준 GDP가 명목 GDP보다 크다.

세계은행은 2014년에 PPP기준 GDP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물론 중국의 1인 GDP는 PPP기준으로 미국의 23%로 중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미국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다. 2013년에 중국의 실질 GDP는 약 9조3,000억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의 55% 수준에 머물었지만 양국의 물가 차이를 감안한 PPP기준 GDP는 중국이 미국의 95,9%에 이르렀고, 세계은행의 발표는 미국 주요 경제 일간지들의 1면을 장식하며 세계 경제 패권을 둘러싼 G2간의 다툼을 예고했다.

 

양국의 경쟁이 점차 과열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중국을 견제할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보고 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국 가운데 12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중국의 10대 교역국 중 미국,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 등 4개국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TPP가 중국의 참여 없이 타결될 경우 중국의 무역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중심의 무역협정 체결 전략
TTP는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태평양 4개국이 2005년 체결한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SEP)으로 시작해, 2008년 1월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이들과 투자 협정을 맺을 목적으로 TPSEP에 가입을 원하면서 주변국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호주, 페루, 베트남이 추가로 가입했다.
2009년부터는 오바마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현재의 TPP의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이후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캐나다와 멕시코가 참여했고, 2013년 일본이 가입하면서 TPP는 전 세계 GDP의 37.5%,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하는 ‘메가 FTA’로 성장했다.    

미국이 메가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유는 새로운 시장 확보 때문이다. 양자 간 FTA에 비해 다자 간 FTA는 협정 당사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협정체결 자체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또한, 미국 내 일본의 TPP 참여의 대한 반발도 거세다. 그러나 미국은 메가 FTA를 통해 새로운 시장 확보와 함께 외부적인 경기 부양 통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국은 TPP 12개국 중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싱가포르, 호주와 이미 FTA를 맺고 있다. 2013년 기준 이들 FTA 국가들과의 교역량은 총 TPP교역량의 약 82%이며 수출 비중은 약 88%에 달한다. 즉 미국이 TPP로 인해 얻는 추가적인 시장 확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가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TPP로 인한 미국의 GDP 증가는 약 0.5%, 수출 증가는 약 4.4%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됐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일본이 TPP에 가입할 경우 미국의 혜택이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최근 한미 FTA 이후 한국무역적자가 늘어난 사례로 보아 일본 참여에 따른 미국 혜택이 과장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이 자국의 수입 장벽을 낮추면서 얻을 경제적 혜택 또한 크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가 2013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관세를 모두 철폐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2017년까지 연평균 11억달러로 미국 GDP의 0.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TPP를 통한 미국의 단기적인 경제적 혜택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TPP의 조속한 타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미국이 중국보다 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지역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APEC 21개국을 아우르는 지역무역협정의 사례를 먼저 마련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APEC은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2020년까지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일명 ‘보고르 목표’에 합의했다. 이후 보고르 목표 달성을 위해 APEC은 2006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Asia Pacific, FTAAP)를 구축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경제의 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PEC 21개국 중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TPP가 FTAAP의 모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자체 무역협정을 통해 APEC지역에서 누릴 경제적 혜택은 TPP보다 월등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APEC지역은 다양한 경제 개발 수준의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업 국가 중국과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막대한 소비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APEC지역에서 체결되는 FTA는 장기적으로 매력적이다.

 

2015년 상반기에 TPP가 최종 타결 기대
현재 TPP 협상의 남은 과제 중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미국과 일본의 농축산물 시장과 자동차 시장 개방 협상이다.
미국과 일본의 주요 교역 품목이 한국과 미국의 품목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한미 FTA 체결 당시 겪었던 상황과 비슷한 난항이 재발될 수 있다. 특히 한미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되던 2014년 3월 미국의 한국 무역적자가 발효 전에 비해 47%나 증가했다는 사실이 미국을 망설이게 한다. 미국 정치권 및 산업계에서 한미 FTA와 동일한 수준의 일본과의 협정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2014년 9월 미일 자동차 관련 협상에서 미국이 한미 FTA의 스냅 백(snap-back)조항보다 강력한 관세 인하 연기 조치(tariff delay mechanism)를 앞세운 것도 미국 정부가 자국의 자동차 업계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요구는 양국의 협상 진행에 더욱 어려움을 주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정치권 문제도 TPP의 장애물 중 하나이다. TPP 비준안 승인에 핵심적인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을 재도입하는 법안이 2014년 1월 미국 의회에 상정되었으나 현재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가 TPA 없이 TPP를 체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미국이 일본과의 농업 분야 및 자동차 시장 협상에서 미국 산업계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한다면 TPA 없이 의회의 표결을 통해 승인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이 TPA 없이 비준안 통과에 성공한 FTA는 요르단과의 FTA 뿐이다.

이렇듯 복합적인 이유로 TPP의 타결이 지연되고 있지만 2015년 상반기에 TPP가 최종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높은 편이다.
2014년 6월 호주의 앤드류 롭(Andrew Rob) 무역투자부 장관은 미국의 공화당 의원들이 2015년 상반기에 TPP를 통과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롭 장관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2015년 하반기 전에 TPP 비준안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2015년 초에 미국과 일본이 수준 높은 시장 개방에 합의할 수 있느냐에 TPP의 운명이 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이 협상이 하반기로 넘어간다면 미국의 대선 경쟁 속에 TPP가 2015년 연내에 타결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질 것이다.

 

TPP 타결이후 첫 추가 참여국 한국으로 전망
미국은 한국이 TPP에 참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한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 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비관세 장벽 해소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미국은 크게 원산지증명 절차,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유기농 상호인증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중 원산지 증명절차는 2014년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입증서류를 인정하기로 합의하면서 해결 국면에 들어섰으며 유기 가공식품에 대한 인정도 같은 해 7월 1일 발효되었다. 반면 저탄소차 협력금제도는 2020년 이후로 연기된 상태이다.
한국은 TPP 참여국들과 예비협상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TPP 12개국 중 9개국과 이미 FTA를 맺고 있다. 나머지 3개국 일본, 뉴질랜드, 멕시코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따라서 TPP 최종 타결 이후 한국은 최초의 추가 참여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워싱턴 내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추진한 한중 FTA가 중국의 TPP 가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 FTA를 통해 최신 국제 기준을 적용한 높은 수준의 협정을 체결한 경험이 있는 한국이 중국과의 FTA 바탕으로, 중국 또한 TPP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미국 중심의 무역 체제로
2014년 8월 미국 의회조사국은 중국 경제 성장에 따른 미국의 영향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미국의 주요 수출시장이 될 것이며, 향후 중국 경제가 미국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중국의 불완전한 시장경제가 국유기업 보호주의 등 불공정 무역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강조하며, 향후 중국이 국제무역 체제를 존중하고 체제 유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미국의 중국 경제정책의 주요 과제라고 평가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조건 중 하나였던, 중국산 제품에 대한 특별 세이프가드조치(Transitional Product-Specific Safeguard Mechanism) 역시 2013년 말 만료되어 WTO 체제 내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가 어려워진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만큼 새롭고 포괄적인 무역 협정을 통해 미국 중심의 무역 체제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미국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인 것이다.

TPP가 주도하는 FTAAP가 성사될지, 한중일 FTA와 같은 다른 무역 협정이 그 자리를 대신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머지않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메가 지역무역협정이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은 G2를 포함하는 세계 중심의 FTA 생성 과정에서 한국의 잠재적 위치와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윤희선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그리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