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범위의 환차 내 수입제품 가격 조정 요구도

엔저의 공습이 대만에서 벌어졌다. 엔화 가치가 지속해서 하락하면서 최근 대만 내 일본계 생활잡화 브랜드 도큐핸즈와 식음료 및 주방생활 브랜드 에프터눈 티(Afternoon Tea), 의류 및 생활잡화 브랜드 MUJI 등 일본 상품 가격이 줄줄이 인하되고 있다.
얼마 전 MUJI는 대만 경제부에 일종의 ‘커피타임’ 회동 요청을 받아 합당한 범위의 환차 내에서 수입제품의 가격을 조정해 줄 것을 요구 받았고, 도큐핸즈는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1천여종의 일본 수입 화장품 가격을 7~15% 인하했다. 에프터눈 티는 지난 3월 중순경부터 선보인 식기와 냄비 등의 주방용품 신제품 가격을 10% 가량 인하하는 등 엔저 기회를 본격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이에 대만의 일본계 업계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계 회사인 SOGO백화점은 훗카이도 상품전 특별행사에서 엔저의 영향에 발맞춰 상품 가격을 약 6% 인하하여 판촉전을 펼치고 있고, 일본제품 수입업체들도 현재의 할인 판매에서 향후 추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할 예정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펑화이난 대만 중앙은행 총재도 직접 나서 엔저현상이 6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일본 수입상들이 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펑화이난 총재는 “엔화는 대만 달러보다 15% 가량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만약 다른 비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 일본 생활용품들은 최소 제품 가격의 15% 정도의 인하폭이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등 이례적으로 일본제품의 가격인하를 촉구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대만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본제품의 가격 인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언급하며 연합행위, 과장광고가 이뤄졌는지 검토해 불공정 행위가 발견되면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충성도 높은 일본제품 구매자들
이렇듯 대만 내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구매자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이 제품가격을 인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줄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월부터 3월까지 일본 화장품 가격은 인하하지 않았음에도 판매량은 전혀 감소하지 않았고, 일부 브랜드들은 오히려 판매량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 상품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는 대만인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제품 가격 인하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일본 제품의 가격인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우리나라 기업 제품이 타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가격인하를 하지 않아도 판매량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과 수입상들이 가격을 전격적으로 인하와 추가 인하를 단행할 경우 그 여파는 한국 제품 판매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 정부의 일본식품 PUSH
현재 대만 정부는 일본 제품을 상대로 가격인하에 대해 강도 높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 세계 세 번째의 일본 식품 수입국으로 자리하고 있는 대만이 일본 식품 수입에 대해 수입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규제책을 내 놓았다.
대만의 식량 자급률은 약 30%로 해외 수입식품의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국가이다. 대만농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식량 자급률은 33.3%로 지난 1984년 이래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면 2012년 대만의 수입식품 규모는 2,476억 대만달러로 2002년 845억 대만달러 대비 3배 가까이 성장했으며, 최근 10년 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제품 선호경향이 강한 대만은 매년 10억달러 규모의 일본 식품을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양으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의 對대만 식품수출액 비중이 대만의 식품 수입액 상위 10개국 안에 들 정도로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만 정부는 일본 식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철저한 규제에 들어갔고, 흠이 하나라도 발견되는 즉시 법적인 절차를 단행하는 등 일본 식품업계 길들이기에 나섰다.

후쿠시마 지역 식품 적발로 발칵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위험에 대한 위기감이 대만에서는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방사능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전 세계가 떠들썩할 때 대만에서는 가까운 골목 가계에서도 일본산 식품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관대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 3월 대만 장화현 위생국이 장화현 내에 위치한 위마오우 슈퍼마켓 창고에서 수입이 금지된 원전 피해지역 식품 14종을 적발하면서 일본 식품에 대한 관대함이 점차 배신감으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적발된 제품은 보름달 모양의 쿠키 소월광병(小月光□), 커스타드크림(□士達醬粉), 아사히 16차(ASAHI十六茶), KitKat 미니 초콜릿(KitKat巧克力□乾) 등 이상 14종인데, 이들 제품에 대해 대만 위생복리부는 전량 판매 중단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더욱이 대만인들의 분노를 사게 된 주요 원인으로는 처음 제품을 들여오면서 수입기업이 장화현 위생국 검사에서 원산지를 허위표시를 하여 검열을 통과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대만 위생복리부는 원산지 표시 검열을 강화했고 대만 백화점들과 일본 식품 전문 판매점 등에서 200여종의 원산지 허위표시 일본 식품들을 적발하는 등 일본 식품에 대한 검열을 더욱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15일 대만 위생복리부는 일본 식품 수입규제 강화를 실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본 특정지역 식품에 대해 방사능 수치 검사 증명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방사능 수치 검사서는 일본 정부 또는 정부기관의 정식 인증 절차를 통과해야만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칫 외교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소지도 다분해 일본 정부로써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대만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일본 농수산식품에 대해서도 산지증명서를 필수로 제출할 것도 요구했다. 산지증명서에는 일본 정부, 일본 정부 인증기관이나 기구에서 발급되는 것으로 각 시도, 부, 현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야 대만으로 수출이 가능토록 했다.

 

일본 정부에 이례적인 강경 대응
일반적으로 식품에 관해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는 있었어도 특정 국가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만 언론들은 자칫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는 보도들을 쏟아내자 마잉주 대만총통은 “식품문제는 외교문제와는 별개”라며“하지만 일본 식품의 산지 허위표시 문제는 투명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며 강경하게 대응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특사를 대만에 파견해 대만 정부측에 일본 식품 수입규제에 대해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며 진화에 나섰다. 일본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를 대만으로 급파하여 아베 총리의 전언을 마잉주 총통에게 전하기도 했다.
또한 하야시 요시야마 일본 농림수산대신은 과학적 근거에 의한 일본 식품 수입규제 완화에 대한 WTO 협정안을 들며 수차례 요구를 했으나 대만 측이 일방적으로 취한 조치라며 유감의 뜻을 밝히는 등 이례적인 대만의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WTO에 제소로 맞대응
현대 대만 위생복리부는 일본 수입식품에 대한 방사능 수치 검사 내용과 산지 증명은 한국과 중국에서 이미 시행중이며 전체적인 입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BBC가 대만 현 국민당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연이어 발생하는 대만 내 식품파동으로 인한 당지지도 하락을 염두에 두고 일본 식품 파동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보여주고자 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분석하는 보도를 냈지만 대만 정부는 이에 대해 논평가치도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대만의 이 같은 조치는 일방적인 처사라며 세계무역기구 WTO에 정식으로 제소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대만이 WTO SPS 협정, 즉 세계무역기구 위생 및 검역조치에 관한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대만 국민들은 잇따른 식품 파동으로 대만 식품시장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식용유 파동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미역에서부터 후추, 녹두와 대만 유명 차 프랜차이즈 기업의 찻잎 농약문제 등 지속적으로 식품 관련 문제들이 터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만국민들은 대만기업 식품이든 수입식품이든 상관없이 신뢰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식품 품목 중에는 사과와 같은 과일에서부터 과자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이 겹쳐 경쟁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일본 식품 수입은 주춤해 질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 기업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현명하게 대처를 한다면 대만시장에서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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