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有錢無罪)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돈이 삶의 수단이 되므로 항상 중요하다. 하지만 옛날과 지금은 돈의 쓰임새가 분명히 달랐다. 물론 물질보다 도덕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돈사용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에 “인자는 재물로써 몸을 일으키고 불인자는 몸으로써 재물을 일으킨다.[仁者 以財發身 不仁者 以身發財]”고 하였다. 동한(東漢)시대 학자 정현(鄭玄)은 이에 대해 “인자는 재물을 남에게 베풀어 입신양명하고, 불인자는 몸과 마음이 재물에 빠져들어 부의 축적을 추구한다.”고 풀이했다. 결국 인자는 부를 인격수양의 수단으로 삼지만, 불인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부(致富)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황금만능시대에서는 돈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그렇다보니 현대인에게는 이신발재(以身發財)가 삶의 수단이 되었다. 치부가 인간의 최대 욕망이 된 나머지 물욕을 쫓아 인간의 본성이 변질되고 인심도 각박해졌다.

결국 인간의 도덕성마저 실추되어가는 상황에서 미진보벌(迷津寶筏)을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것이 오늘날 21세기 문명이기로 인한 고질적인 병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법치국가이다.사회에 수레의 끌채와 같은 신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법(法)이 존엄해야 한다. 그렇다고 형벌을 가혹하게 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법의 본질은 물처럼 양쪽을 공평하게 저울질하는 것이다. 정의와 불의를 엄격하게 가려 사회기강을 바로잡는데 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범죄자도 돈을 들이면 죄가 감면되기도 한다. 물론 돈이나 물품으로 속죄 받는 행태는 옛날에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각 지방에는 전쟁의 혼란을 틈타 부패와 비리가 성행했다. 정유년 5월 어느 날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는 중 전남 구례에서 유숙하는데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파리 떼가 몰려와 거처를 옮겨야 하는 등의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이때 이순신은 평북 박천군수 유해(柳海)로부터 행형제도의 비리를 듣는다. 과천 향청의 우두머리 안홍제(安弘濟)가 죽을 죄도 아닌데 여러 번 형장을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이상공(李尙公)에게 말과 스무 살 난 계집종을 바치고서 석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비통했다. 그리고 구우(瞿祐)의『전등신화』에 나오는 “백전(百錢)의 돈으로 죽은 혼도 살게 한다[一陌金餞便返魂]”는 말을 인용하였다.

돈이 죽은 사람을 환생하게 하듯이 물품을 바치면 면죄되는 실태를 비판한 것이다. 원칙과 규정을 무시하고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설사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실상이 드러날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사회의 통념에는 항상 올바른 도덕관념이 존재한다. 때문에 자신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의 눈을 대신하는 민중의 눈은 속을 수 없는 것이다. 이순신은 유학의 이론을 몸소 실천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명량 영화이후 이순신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위인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으로 인해 요즘 이순신의 정신을 배우자는 여론들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물질문명이 아무리 고도화로 발달했어도 도덕성이 결핍된 인정마저 충족시키지는 못하므로, 그의 가르침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정작 이순신에게서 무엇부터 배워야 하냐고 그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즉답을 어려워한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盡己]”이다. 온 국민들이 이를 바탕하여 도덕을 실천해나간다면 저마다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순신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역서 : 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2014) 쉽게 보는 난중일기(여해, 2014) 저서 :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2014)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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