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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최한기 기자  |  newschoi@dailygri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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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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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은 라가르스가 세 번 고쳐 쓴 희곡이다. 작품에서 불치병으로 등장하는 루이는 에이즈로 사망한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의 연극적 고뇌와 성찰이 반영된 독특한 형식, 시적인 문체가 어우러져 문학성과 연극성이 고루 고취된 작품이다.

   
 
어느 일요일, 어머니가 딸 쉬잔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 10년 전에 집을 떠났던 장남 루이가 돌아온다.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식구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작은아들 내외인 앙투안, 카트린까지 모처럼 가족이 만나는 자리지만 식구들이 쏟아붓는 원망, 비난, 분노, 죄의식, 책임감 등 말의 홍수 앞에서 루이는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난다. 탕자 아들의 귀환, 카인과 아벨, 율리시스 같은 성경이나 신화에서 차용한 테마를 찾아볼 수 있으며 가족, 소통 부재, 고독, 사랑과 죽음, 부재, 실종, 여행, 허위의식 등의 주제도 엿보인다.

대사가 유연하게 흐르지 못하고, 망설임·반복·본론에서 벗어난 이야기·마침표와 쉼표의 나열·시적인 문체·파편화·콜라주 등의 요소로 말하기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시간 흐름이 논리적이지 않고 무질서한 기억에 따라 시간이 회귀하는 부분도 형식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단지 세상의 끝≫ 133-134쪽이 시는 읽는 이에게 깊은 감상을 던져준다.

 

내가 부재했던 여러 해 동안, 어느 여름날,
프랑스 남쪽에서다.
밤에, 산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에,
철도를 따라 걷기로 결심한다.
난 그 길이 구불구불한 도로를 피하는,
지름길이고, 집 근처를 지나간다는 걸 안다.
밤이면, 어떤 기차도 다니지 않으니까, 위험하지 않을 거고
그렇게 해서 난 길을 찾게 되겠지.
어느 순간, 거대한 철교 입구에 도달한다,
달빛 아래 철교는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고,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밤,
홀로 걷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건
(바로 이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거다)
크고 멋진 소리,
계곡에 울려 퍼지도록 환희에 찬 긴 함성을 질러야겠다고,
나한테 선사해도 될 그런 행복,
힘껏 한 번 소리쳐 보는 것,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갈 위에서 내 발소리와 함께 난 다시 길을 떠난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장뤼크 라가르스(Jean-Luc Lagarce)는 1957년 2월 14일 프랑스 오트손 지방 에리쿠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푸조 공장 노동자로 있던 발랑티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1975년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 브장송으로 간 그는 브장송 국립연극원에도 등록한다.

1977년 연극원 동기들과 아마추어 극단, “마차극장”을 만들어 직접 연출을 맡아 베케트, 골도니,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기 시작한다. 1979년 희곡 <카르타고>가 ‘프랑스 퀼튀르(프랑스 문화)’ 라디오 방송에 낭독 형식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이후 희곡 여러 편이 방송에서 낭독된다. 1980년 브장송대학에서 <서양에서의 연극과 권력>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다.

박사 과정을 중단하고 1981년부터 프로 극단이 된 “마차극장”에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라신, 몰리에르, 마리보, 페이도, 라비슈, 이오네스코 같은 대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비연극 작품을 각색한 작품이라든가 자신의 희곡을 포함해 20편의 작품을 연출한다. 1982년, 희곡 <마담 크니페르의 동프러시아 여행>이 장클로드 팔 연출로 당시 코미디 프랑세즈 주관이던 오데옹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렇게 해서 라가르스의 작품이 외부 연출가에 의해 공연되기 시작하고, “열린 연극”에서 출간된다. 그사이 다른 연출가에 의해 라가르스의 작품 네 편이 공연된다. 1990년 이후부터는 그의 작품이 계속 공연, 출판되면서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다. 1988년에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전부터 질병, 죽음, 실종에 대한 테마를 작품에서 다루고 있었다. \

특히 1982년에 쓴 <페스트가 있던 해의 막연한 기억들>에서 이러한 암시를 했다. 1983년과 1988년에 국립문예진흥원에서 지원금을 받은 바 있으며, 1990년에는 빌라 메디치에서 제정한 ‘레오나르다빈치상’을 수상하면서 창작 지원금을 받아 6개월간 베를린에 체류한다. 거기서 <단지 세상의 끝>을 쓴다. 이후 자신의 희곡이 작품 심사를 거부당하자 2년간 집필을 중단하고 연출과 각색에 몰두한다. <단지 세상의 끝>을 개작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먼 나라>를 완성한다. 1995년 9월 30일, 베데킨트의 <루루>라는 작품을 연습하다 37세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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