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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괴테 시선 1,2
[신간] 괴테 시선 1,2
  • 장영신 기자
  • 승인 2016.07.1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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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시성(詩聖) 괴테가 1757년부터 1775년까지 쓴 초기 시들을 모았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쓴 시부터 아나크레온 풍의 시, 질풍노도의 시대에 쓴 제젠하임의 시, 위대한 찬가들, 예술가의 시, 발라드, 기회시, 릴리의 시 등을 차례로 엮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인 임우영 교수의 자세한 해설이 어렵기만 했던 괴테를 한층 가깝게 음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독일의 시성(詩聖) 괴테의 첫 번째 바이마르 시대 시들을 모았다. 괴테의 시 중 가장 유명한 <일메나우>, <마왕>, <달에게> 같은 작품들이 바로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오만하고 열정적이었던 질풍노도 시대의 청년 괴테가 어떻게 절제와 깊은 성찰을 통해 정신적인 성숙에 이르는지 볼 수 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인 임우영 교수의 자세한 해설이 어렵기만 했던 괴테를 한층 가깝게 음미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괴테를 사람들은 시성(詩聖)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시를 소월(素月)의 시처럼 정겹게 읊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두고두고 읽으면서 그 의미를 가마솥에서 사골을 우려내듯 음미해야 제맛이 난다. 왜냐하면 그의 시는 시인 자신이 체험한 현실과 생각을 가슴속 깊이 녹여서 일기나 자서전을 쓰듯이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현실은 대부분 자연과 인간과 사랑과 예술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괴테의 시를 읽으면서 그와 함께 그가 살던 시대를 여행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넘어 그 시대의 정신과 생활상 그리고 그와 얽혀 있는 인간관계를 함께 경험해 보는 기회를 맛보게 된다.

 

괴테는 많은 시를 썼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그가 살아온 여러 시기를 대표하는 시들로, 독일에서 괴테 전집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널리 알려진 “함부르크판 괴테 전집(Goethe. Werke. Hamburger Ausgabe)”에 수록된 시와 해설을 기본으로 했다. 거기에 빠져 있는 시들은 필요에 따라 추가했다. 따라서 이 전집을 편집한 에리히 트룬츠(Erich Trunz)가 분류한 괴테의 창작 시대와 시 형태에 따랐다.

물론 최근 독일에서 나온 괴테 전집에는 창작 순서에 따라 거의 모든 시가 총망라되어 있는 것이 추세이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 많은 시 중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시들을 선별해서 읽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1757년부터 1775년까지의 초기 시만을 수록했다. 이후 1776년부터 1786년 이탈리아 여행까지의 시들, 이탈리아 여행 이후 고전주의 시대의 시들, 그리고 만년의 시들을 묶어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단 ≪로마 비가≫, ≪서동시집≫이나 ≪라이네케의 여우≫, ≪마리엔바트의 비가≫, ≪크세니엔≫ 그리고 ≪베니스의 에피그람≫처럼 독립적으로 발표했거나 묶여 있는 시집들은 가능하면 별도로 묶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괴테의 작품은 괴테도 말했다시피 한 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각 시에 간단한 해제를 덧붙였다. 해제에는 이 시를 창작한 동기와 시기, 발표 연도와 그 후 수정한 사실, 시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정보를 제공했다. 일단 시를 먼저 읽고 독자 스스로 시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해 보기 바란다. 만약 스스로 시의 의미를 파악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시의 의미가 모호하다면 해제를 읽고 다시 한 번 시를 읽기를 권한다. 그러면 괴테의 의도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시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면, 해설과 상관없이 공감하는 구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들장미(Heidenröslein)

한 소년이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그렇게 어리고 아침처럼 고와
가까이 보려 서둘러 달려가
너무나 즐겁게 쳐다보았네.

장미화야, 장미화야, 붉은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소년이 말했네, 난 널 꺾겠다고
들판에 핀 장미화를.
들장미 말했네. 난 널 찌르겠다고

네가 날 영원히 생각하도록.
그리고 그걸 괴로워하지 않겠다고.
장미화야, 장미화야, 붉은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그러나 그 무모한 소년 꺾었네

들에 핀 장미화를.
장미화 저항하며 찔렀네.
고통과 한숨도 아무 소용없었고
참아야만 했네.
장미화야, 장미화야, 붉은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9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 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 ≪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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