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고증

  《난중일기》갑오년 11월 28일 이후 기록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의 두 글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난도(難逃)이다. 이를 글자대로 해석하면 “도망하기 어렵다.”는 뜻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떠한 의도로 작성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보통은 전후문맥으로 의미를 유추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두 글자가 따로 독립된 형태로 적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필자가 몇 년전 증보판《난중일기》를 낼 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 명초(明初)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의『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104회 내용에서 난도(難逃)의 용례를 확인한 것이다. 여기서는 난도정수(難逃定數)라는 말이 나오는데, “정해진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기존에는 도(逃)자를 “도망”으로 풀었지만, 이번에는 원전에 근거하여 “피하다”로 푼 것이다. 이를 밝히기 전까지는 독자들이 대부분 도망의 의미로 잘못 알고 있었다.

   난도정수(難逃定數)란 말의 배경은 이러하다. 중국 촉한의 정치가 제갈량이 침상 위에서 죽음을 앞두고 손수 유표(遺表, 임종시 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써서 한나라 후주에게 전했다. 바로 그 표(表)의 내용 속에 그 말이 나오는 것이다. “삼가 생각건대 살고 죽는 것에는 상도가 있으니, 정해진 운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죽음이 장차 이르려고 하는데 저의 충정을 다하고자 합니다.” 적벽대전에서 유비를 도와 승리하게 하여 천하에 명성을 떨쳤던 제갈량이 임종하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이순신이 난도(難逃)를 인용하여 일기에 적은 것을 보면 그 역시 전쟁 속에 처해있는 기구한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돌리고자 한 것이 아닐까. 결국 연일 갑옷을 입은 채 설잠을 자며 하루도 편히 쉴 수 없는 전쟁생활의 번민과 고통을 자신의 운명으로 치부하고자 한 것이다. 제갈량의 임종도 이순신의 고군분투도 모두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다.

   공자(孔子)도 위(衛)나라에서 진(晉)나라로 들어갈 때 황화에 이르러 조간자(趙簡子)가 무고한 신하들을 죽인 것을 듣고는 “아름다운 강물이 넓지만 내가 건너가지 못하니, 이것이 운명이다.”라고 탄식했다. 전쟁 중 명군과 일본군이 철수함에 따라 명과 조선은 일본과 강화협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수군은 국지전을 벌이게 되는데, 갑오년 10월에 치른 영등포해전과 장문포해전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순신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왜군을 물리칠 별다른 계책을 세우지 못함을 탄식했다. 이에 인간의 노력에 한계를 느끼고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難逃]”라는 말로 자신의 위안을 삼고자 했던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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