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발견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삼국지》를 읽고 참고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위한 중대한 전쟁을 하는데 소설에 의존할 리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이란 것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몇 년전 필자가《난중일기》에 적힌 인재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구절의 출처를 중국 명초의 소설가 나관중이 지은《삼국지연의》에서 처음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전까지만해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 내용은 바로《난중일기》속의《갑오일기》11월 28일 이후에 적혀 있고,《삼국지연의》22장〈조조가 군대를 나누어서 원소를 대항하다[曹公分兵拒袁紹]〉에서 인용한 것이다.

“밖에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이 없고 안에는 계책을 결정할 동량이 없다. [外無匡扶之柱石, 內無決策之棟樑]”
“배를 더욱 늘리고 무기를 만들어 적들을 불안하게 하여 우리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增益舟船, 繕治器械. 令彼不得安, 我取其逸]”
 

   전자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함을 말한 것이고, 후자는 내실을 기하는 노력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갑오년 10월에 치른 영등포해전과 장문포해전에서 별다른 전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이순신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남다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쟁에 도움이 되는 글을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이 정확한 사실일까. 본래《삼국지연의》는《수호지》,《서유기》, 《금명매》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奇書)로 알려져 있다. 서진(西晉)의 학자 진수(陳壽)가 쓴 정사《삼국지》를 토대로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소설체로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삼국지연의》판본은 여러 가지이며 판본마다 글자의 차이가 있다. 이순신이 전쟁 중에 기록한《삼국지연의》의 판본은 정확히 중국 가정嘉靖 임오(壬午, 1522)년에 간행된 가정임오본『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다.

   2013년 3월 필자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조선일보에 발표하자, 신기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는가하면 이순신을 제갈량의 아류로 만드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독자도 있었다. 삼국시대 촉한의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와 전쟁하기 위해 원소(袁紹)에게 지원을 요청하려고 할 때 원소와 친분이 있는 정현(鄭玄)에게 추천서를 받았다. 위 의 첫 번째 구절이 바로 그 추천서의 일부 내용이다. 유비가 이 글을 원소에게 보내자, 마침내 원소는 바로 지원출동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때 원소의 부하 전풍(田豊)이 성급한 결정은 위험하다며 출동을 반대했다. 위의 두 번째 구절이 바로 전풍이 원소에게 반대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순신이《삼국지연의》를 탐독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기록도 있다. 조선후기 학자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지은『청성잡기(靑城雜記)』「성언(醒言)」에서 이순신이 친구를 통해《삼국지연의》를 구해봤다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 이순신은 세상을 피해 도를 닦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어 나랏일을 함께 도모하자고 부탁했다. 이에 그 친구는《삼국지연의》를 보내면서 이 책을 숙독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볼 때 이순신이《삼국지연의》를 읽고 삼국시대의 전쟁사건을 참고하여 교훈으로 삼은 것이 사실이다. 연이은 전쟁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가 황폐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했다. 무엇보다 무리한 전쟁보다는 군대를 정비하며 내실을 기하는데 주력하고자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옛 교훈에서 인생에 도움되는 지혜를 발견한다. 설사 그것이 소설일지라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거기서 인재의 중요성과 자력갱생의 의미를 찾았다면 이것이 삶에 유용한 진리가 아닐까.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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