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문헌고증 - 他校法

   1597년 5월 21일 평북의 박천(博川) 군수 유해(柳海)가 이순신을 찾아가 자신도 한산도에 가서 공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당시의 형사사건을 전해주었다. 의금부 감옥에 갇힌 이덕룡(李德龍)을 고소한 사람이 옥에 갇혀 세 차례나 형장(刑杖)을 맞고 다 죽어간다고 했다. 또 유향소에서 가장 높은 과천의 좌수(座首) 안홍제(安弘濟) 등이 이상공(李尙公)에게 말과 스무 살 난 계집종을 바치고 풀려났다고 했다.

  이에 이순신은 안홍제는 본래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여러 번 형장을 맞고 거의 죽게 되었다가 물건을 바치고서 석방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이것이 이른바 “백전(百錢)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린다[一陌金餞便返魂].”는 말이라며 물질적인 것을 바치고 석방되는 행태를 풍자하였다.
-《정유일기》 5월 21일 -

   이《난중일기》내용에서 인용된 “일맥금전편반혼(一陌金餞便返魂)”이란 말의 출전은 필자가 처음으로 밝혔다.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판독한《난중일기초》에는 맥(陌)자가 맥(脈)자로 되어 있었다. 한문고전은 대부분이 옛 문헌의 고사나 용어를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번역할 때는 우선 정확한 출전을 찾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일맥금전(一脈金錢)이란 구절은 고전문헌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즉, 맥(脈)자가 오독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굳이 해석하면 “한 줄기 금전”이란 뜻이 되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설사 글씨 형태가 맥(脈)자가 맞더라도 이대로 해석하면 말이 안되므로 역시 오독이 되는 것이다.

  우선 일맥(一陌)이란 어원을 살펴보겠다. 맥(陌)자는 백(佰)과 통하니, 일맥은 곧 일백전(一百錢)을 뜻한다. 이는 본래 백장의 종이돈에서 유래하는데 한꿰미의 돈을 의미한다. 중국 원나라 때 왕자일(王子一)의《오입도원(誤入桃源)》에 보면, “백장의 종이돈[一陌紙]을 불살라 각 집마다 평안을 기원한다.”고 하였고, 중국의 장회소설인《수호전》에 “하구숙의 손안에 백장의 종이돈[一陌紙錢]이 쥐어진 채 왔다.”고 한 내용이 있다. 조선 후기 학자 이명오(李明五)의《박옹시초(泊翁詩鈔)》에는 “점포가 멀어 일백전(一陌錢)이 없다.”고 하였고,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중국은 돈 16엽이 일맥(一陌)이다.”라고 하였다. 유언술(兪彦述)은 《연경잡지》에서 “산해관에서 북경지방까지는 백개를 일맥(一陌)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일맥(一陌) 뒤에는 항상 돈이란 말이 관용적으로 붙는다. 따라서 일맥(一陌)은 돈의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일맥(一陌)이 포함된 일맥금전편반혼(一陌金餞便返魂)의 출전을 명나라 구우(瞿祐)가 지은『전등신화(剪燈新話)』「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에 나오는 7언 율시에서 찾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호선(令狐譔)은 강직한 선비로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어느 날 오로(烏老)라는 이가 병으로 죽었는데, 그 가족들이 불사(佛事)로서 많은 돈을 불살라 저승의 관리가 기뻐하여 소생하게 했다는 말을 듣고 풍자시를 지어 탐욕스런 자가 돈으로 환생한 것을 비판하였다.
 

  최덕중(崔德中)이 쓴《연행록일기》2월 19일자에도 위와 같은 구절이 보인다. 운반 담당자 난두(欄頭) 등이 배마다 은 10냥씩을 사행(使行)에게 받아서 7냥 반을 자기네가 먹고 2냥 5전만 짐꾼들에게 주어 요동까지 운송하게 하였다. 일행의 짐이 너무 많아 모두 손해보고 동팔참(東八站) 고군(雇軍)과 호상(胡商)도 모두 업(業)을 잃었다. 이들이 서로 송사를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백전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린다.[一陌金錢便返魂]”라는 시구의 의미를 여기서 징험했다. 청나라 조정의 신하들도 이런 폐단을 잘 알지만, 돈 많은 자에게 팔려가서 이의가 있는 자는 귀양을 보낸다 하니, 참으로 애통하다. 
                                                                  -《연행록》〈연행록일기〉(한국고전번역원 인용) -

  일맥금전편반혼(一陌金餞便返魂) 구절의 출전은《전등신화》와《연행록》이다. 출전을 무시하고서는 결코 바른 뜻이 나올 수 없다. 일찍이 필자는 초서연구를 하는 많은 대가 선생님들에게 초서해독법을 배웠다. 특히 난해한 초서해독에는 문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문팔초이(文八草二)라는 말을 익히 들었다. 즉, 한문 문리가 8이고 초서글씨가 2라는 뜻이다. 결국 글씨 형태보다는 전후 문맥상의 의미로 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7자에 대해서는 문헌고증 뿐 아니라 해독당시 이미 인문학계의 고전전문가들에게 검증을 받은 것이므로, 그 후로는 어떠한 지적도 받은 적이 없었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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