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몫

   1693년 이후《난중일기》를 초록한〈일기초〉가 담긴《충무공유사》가 이순신과 관계된 어느 누군가에 의해 필사되었다. 필자는 초서로 된 이 책의 전편을 처음으로 완역하였다. 1795년《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된 이래《난중일기》에 대한 번역은 1916년 조선연구회의 주간인 일본인 아요야 나기 난메이(靑柳南冥)에 의해 일본어로 처음 시도되었다. 그러나 을미일기 5월 29일까지만 번역하다가 중도에 그쳤다. 그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가 친필본을 다시 해독하여《난중일기초》가 나왔다. 이 판본이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전서본보다는 진전 있는 작업이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후의 암흑기에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폐허를 복구하여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분이 이순신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어 그때부터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1953년 설의식이《난중일기초(亂中日記抄)》를 간행했는데, 이는《난중일기》일부를 초록한 책이다. 1968년 노산 이은상이 친필본과 전서본을 합본하여 난중일기 번역본을 간행하였다. 이 이후《난중일기》번역서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른 바 이순신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에서 가려진 사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난중일기》를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학자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2013년 3월 필자는 1955년도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 최초로 번역한 북한본 난중일기를 발굴하여 국내에 소개하였다. 남북간의 정치적인 이념문제로 가려져 온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것이《난중일기》전편을 처음 번역한 한글본의 원조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정한 연구자의 역할이다.

   한편 요즘 이순신열풍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순신을 연구하겠다는 신진연구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그들에게는《난중일기》가 필독서가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자신감을 얻게 되면 곧바로 펜을 든다. 이순신 관련 좋은 참고서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집필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남의 창작글을 일정부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물론 단순한 사실을 나열한 문장과 고유명사는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므로 예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난중일기》관련한 신자료를 발굴해왔다. 언론과 저서를 통해 소개한《충무공유사》와 아요야 나기 난메이의 일본어 번역본《난중일기》, 그리고 홍기문의 한글번역본 등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다. 최근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짐에 따라 집필하는 이들이 이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세상에 몰랐던 사실을 알리게 된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봇물을 이루는《난중일기》연구서들이 아마도 이순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도덕성이 결핍된 사회현상을 만회하고 이순신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책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 중에 간혹 기존에 바르게 된 내용을 잘못됐다고 한 주장이 있다. 국내 권위있는 고전전문가와 학회에 이미 논문으로 검증 받은 바른 내용을 충분한 논거없이 잘못이라고 지적한 것은 잘못이다. 시대적인 여망에 부응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바른 내용으로 정확히 전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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