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원칙과 소신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도덕성의 내적 기준이 인간 사랑이라면, 외적 기준은 행동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생각이 아무리 정당해도 행동에 규범이 없다면 끝내 도덕을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외의 기준에 맞는 품행을 갖추어야 한다. 언행이 일치할 때 진정한 도덕이 실현될 수 있다. 규범이란, 예(禮)로서 도덕과 법칙의 의미가 포함된 말이며 사회의 질서를 위한 규범이다.

  공자는 “예(禮)로써 단속하면,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다.『논어』「옹야」 항상 규범을 지키면 항상 올바른 품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황석공은 “예는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것이니, 밤낮으로 힘써 인륜의 질서를 이룬다[禮者人之所履, 夙興夜寐, 以成人倫之序].”고 하였다『소서』「원시」. 유가와 병가에서도 중시하는 규범은 조직 지휘에 밑바탕이 될 뿐 아니라 조직 결속의 힘도 있는 것이다.

  이순신은 혼란스런 전쟁 중에도 항상 규범을 중시하였다. 평소에 늘 수양하는 자세로 생활하였기에 항상 철저한 소신과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공무에 임해서는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사적인 청탁이나 비리가 없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간혹 상관으로부터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뜻을 굽혀가며 부당함을 눈감아 줄 순 없었다.

   1579년 2월 인사업무를 관장하는 훈련원(訓鍊院) 봉사(奉事, 종8품)에 재직했을 때(35세) 병조정랑 서익(徐益)이 편법으로 친분이 있는 자를 훈련원 참군(參軍, 정7품)으로 승진시키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상관의 인사청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자를 등급을 뛰어넘어 올리면 응당히 승진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공정하지 못한 일이며, 또한 법규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분, 『충무공행록』 -

 그 당시 훈련원의 관원들은 이순신이 감히 본조에 대항한 일은 앞길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며 심히 우려하였다. 그후 서익이 발포만호에 재직 중인 이순신에게 시찰을 나와서 무기를 정비하지 않았다는 죄로 파직시켰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이순신이 무기정비를 잘했어도 벌을 받은 것은 그전 훈련원에서 복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앙갚음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군대를 엄하게 다스리어 삼군(三軍, 전군)의 군사들이 명령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대범하면서도 몸소 규정을 따랐기에 부하들이 잘 따라 준 것이다. 아무리 권력을 엎고 강한체하는 자라도 이순신의 당당한 모습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부하들에게 상훈을 내릴 때는 귀천과 친소로써 사적인 관계를 절대로 개입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엄격하고 공정한 모습에 부하들은 항상 경외(敬畏)하였다.

  김육(金堉)은 “이순신이 통제한 군대의 규율이 엄숙하여 군사들의 마음이 더욱 예리했다”고 하였다.「충무공신도비」 군법을 엄하게 한 것이 사기진작에 도움이 된 것이다. 제갈량은 “잘 통제 된 병사가 있으면 무능한 장수라도 패할 수 없고, 잘 통제된 병사가 없으면 유능한 장수라도 이길 수 없다[有制之兵, 無能之將, 不可以敗. 無制之兵, 有能之將, 不可以勝].”고 하였다.「병요」 한 조직의 성패여부는 구성원의 철저한 조직력에 달려있다. 엄격한 규범에 의한 조직운영은 조직력 제고에 상당한 영향이 있다. 다만 여기에는 반드시 투명한 공정성과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구성원들이 불평하지 않고 일의 성과를 위해 더욱 진력할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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