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과 간색을 살피자

420년 전 이만 때 조선은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정유재란이 시작되는 정유년(1597)을 맞게 된다.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거짓으로 조선과 수호(修好)를 맺을 것을 요청하고, 자신의 부하인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흉계를 꾸민다. 바로 일본에서 곧 돌아올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요격하기 위해 이순신을 출동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선조에게 “전쟁을 시험삼아 할 수 있겠느냐”며 출동하지 않았다. 

《손자병법》〈지형〉편에 “전쟁 상황이 이길 수 없다면 임금이 반드시 전쟁하라고 명할지라도 전쟁하지 않는 것이 온당하다”라고 하였다. 임금의 명령 보다는 군사의 지휘권을 가진 장수가 전쟁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순신은 결국 왕명거역죄로 체포를 당했다. 이때 선조는 “유키나가가 자세히 가르쳐 주었는데 우리가 해내지 못했으니, 우리 나라야말로 정말 천하에 용렬한 나라이다. 한산도에 있는 이순신은 편안히 누워서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르고 있다.”며 이순신을 크게 원망하였다. 

결국 우매한 선조에 의해 이순신은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몇 배 더 심하게 겪어야 했다. 정보의 진위를 간파하지 못하고 명장을 하루아침에 왕명을 거역한 역적으로 몰아 극형에 처할 위기에 놓이게 한 것이다. 그래도 꿋꿋한 이순신은 담담한 자세로 임하며 선조를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옥지기에게 “죽고 삶은 명에 달렸으니 죽게 되면 죽는 것이다.[死生有命 死當死矣]”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렇게 이순신은 정유년을 시작했다. “정유(丁酉)”를 《주역》으로 풀면 뇌택귀매(雷澤歸妹䷵)괘에 해당한다. 이는 2효(爻)가 동(動)하니, 즉 뇌택귀매괘의 구이(九二)는 “애꾸눈이 보는 것이니 은자처럼 바르게 해야 이롭다[眇能視 利幽人之貞]”고 했다. 송나라 학자 정이(程頤)는 “애꾸눈은 멀리 볼 수 없다.”고 했으니 고요히 들어앉아 아는 것도 애꾸눈처럼 못본 척해야 이롭다. 그렇지 않고 아는 척한다면 모함을 받을 상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전쟁을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모함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풀이가 나온다.

정유년 이후 이순신은 가눌 수 없는 슬픔으로 점철된 비운적 운명을 맞이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로 여겨진다. 그러함에도 그는 현실초극의 모습으로 임하여 이후의 명량해전과 절이도해전, 예교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왜선 2백 척을 분멸하는 큰 전공을 세우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은 유구한 역사 속에 밝게 드러나 있다. 송시열은 “이순신의 전공은 중흥한 위업에 기초가 되었다.”고 하였고, 신채호는 “부패한 국정과 민심이 이순신에 의해 회복되었다.”고 평가했다. 

생각컨대 이러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연구는 정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기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작은 부분일지라도 잘못되면 오히려 그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개중에는 이순신열풍의 탓인지 열정과 관심만으로 너무 쉽게 이순신에 관한 책을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순신에 관한 연구는 먼저 그의 학문과 인격형성과정, 정신세계, 해전사 등을 두루 섭렵해야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이순신과《난중일기》관련하여 집필할 경우, 결국 자신의 비전문성만을 드러내게 된다. 심지어 잘된 부분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여 혼란을 초래하거나 선행 연구자의 학설과 번역을 함부로 무단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개화기 때나 1950∼ 60년대에 있을 법한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에게 대표되는 인물에 관한 연구는 더욱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것이 그분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이다. 철저한 고증도 없이 사회분위기에 편승하여 집필한다면 오히려 왜곡과 낭설들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예로, 자살설, 철갑설, 철쇄설, 은둔설, 해전횟수 등은 지금까지도 시정되지 않는 문제점이다. 이는 모두 개인의 지나친 주관과 편견이 앞선 데서 연유한다. 공자(孔子)는 “자주색이 붉은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한다[惡紫之奪朱也]”고 하였다. 붉은 색은 정색(正色)이고 자주색은 간색(間色)이니 사이비가 정통을 가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새해 정유년에는 세인들이 모두 이순신상을 바로 세우기에 동참하여 정색과 간색을 분명히 가려내고 이순신의 위업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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