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 전철역 3번 출구를 서둘러 나서며 발걸음을 재촉한 것은 트리니티소프트이 김진수 사장(사진)과의 인터뷰 시간이 30분 가량 앞당겨진 때문이었다.

“고객과의 미팅 일정이 급히 잡혀서, 11시까지 오면 어떨까요. 30분 인터뷰 45분 휴식...”김 사장으로부터 미팅 시간을 당기자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은 11월 26일하고 대략 10시 경이었다.

전철역을 나선 후엔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타야 하는 구시가지 골목길을 쓰는 대신, 굴곡이 덜한 대로변 인도로 길을 잡아 김 사장 회사로 걸어갔다.

구로동에 올 때면, 서울의 다른 곳에 비해 이 동네 분위기는 대체로 젊고 치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신생 IT기업들을 한 가득 담고 여기저기 우뚝 솟은 사무용 빌딩들을 올려 보면서, 이 곳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풍족한 자본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대개 자본구조가 취약한 이 동네 IT 기업들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성공을 목적으로 사생결단의 각오를 품고 제품을 개발한다. 또한 그것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부지런히 발 품을 팔아가며 경쟁사들과 치열히 경쟁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운 좋은 기업들은 돈을 벌며 애당초 목적했던 애틋한 소원을 이루기도하지만, 성과를 얻지 못한 기업은 심히 낙담을 한 채 심중에 회한을 품거나, 언제일지 모를 다음의 성공을 기약하며 구로동 바닥에서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그런 기업의 흥망성쇠을 가까이서 찬찬히 목도할 수 있는 동네, 지난 10년 간 IT벨리로 변신을 거듭한 매정한 이 곳이 바로 구로동이다.

약속을 일정을 앞당긴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고객과의 미팅을 추가로 잡았다는 김 사장을 보면서, 그 또한 이러한 치열한 경쟁의 분위기 속에서 이기기 위해 매일매일 시간을 아껴 쓰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11월 말이라서 그런지 김 사장 회사가 있는 E-비즈니스 센터로 인도하는 거리의 바람은 차고 음습했다. 목을 양 어깨에 사이에 깊이 파묻고 그 바람을 피하려 했지만, 빌딩 숲에서 내리치는 겨울 바람 앞에 별 수야 있겠나, 온몸으로 센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촘촘히 옮겨야 했다.

추위로 발걸음이 무거워질 쯤엔‘하늘이 흐리니 몸도 흐리다’라는 격언을 머리속으로 되세기며, 극동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식의 폭이 한없이 넓었음을 뜬금없이 되집어 보았다.

길거리엔 두툼한 외투 차림에 손을 호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직장인들이 회색 보도블록 위에 나뒹구는 가로수의 낙엽을 구둣발로 툭툭 차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사무실에 들어선 낯이 익숙한 객에게 고개를 들어 얼굴을 힐끗 보여주며 외마디 인사말만 던졌을 뿐, 김 사장은 책상 머리에 앉아 데스크톱 화면을 집중하면서 자판만 연신 두드렸다.

“월말이고, 연말도 다가오고 있어 요사이엔 이것저것 처리할 것이 많아요. 오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나요. 바람이 찼을 터인데...”

“하루를 정처 없이 떠돌며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직업인지라... 약속이 정해지면 그냥 시간에 맞춰 그리로 가는 것이… 그래도 칼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어제 보단 그나마 날이 풀렸어요.”

인터뷰가 시작되는 여느 때처럼, 그날도 접대용 소파로 옮겨 앉은 김 사장과 기자는 서로의 안부를 몇 마디 인사말을 건내서 확인했고, 껄껄거리며 몇 가지 농까지 주고받은 이후에야, 얘기의 분위기를 전환하여 정해진 인터뷰 주제를 따라 반복적인 ‘묻기’와 ‘답하기’란 취재여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계속/

<데일리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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