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정월 초입의 어느 날, 데이터베이스 컨설팅 전문업체인 비투엔컨설팅의 조광원 사장(사진)은 회사 출근을 위해 여느 때처럼 아침 6시가 좀 지나서 집을 나섰다.

지난주 시작된 겨울 한파가 여태까지 이어진 탓에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우 차가웠고, 주차장까지 그를 따라오며 얼굴을 따갑게 두드리고 있었다.

승용차에 올라탄 그는 막 바로 회사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회사 근처 휘트니스센터로 방향을 잡아 차를 몰았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몸은 이른 아침이 주는 피로감으로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운동으로 땀을 빼고 난 후엔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을 근육세포가 벌써부터 느끼는 것 같았다.

동짓날을 지난주에야 갓 넘긴 탓에 휘트니스센터로 향하는 패이브먼트의 새벽은 어두웠다. 멀리서 느릿느릿 다가온 대로 옆 가로등 불빛은 차를 통과할 쯤엔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뒤쪽으로 사라져 갔다.

센터에 도착한 조 사장은 맨손체조로 먼저 몸을 가볍게 푼 다음,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기를 시작했다. 20분쯤 지나자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이 목덜미를 흥건하게 적셨고, 내쉬는 호흡까지 힘이 붙을 쯤엔, 바닥을 딛는 발자국 소리 마저 경쾌하게 들려왔다.

이른 아침에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조 사장은 건강 관리를 위해 출근 전에 빼 놓지 않고 이렇게 매일 조깅을 한다. 돌아보면 회사의 얼굴인 CEO로서 그의 몸은 단지 그의 것만이 아니라 전 직원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새벽 달리기를 시작한지도 꽤 여러 해가 흘러갔다.

 ‘아침 임원회의가 있고……, 고객사 미팅은 오후에……. 그리고 점심 땐 C 기자랑 미팅이 있지. 기자에겐 지난해 사업 성과를 정리하고 올해 비즈니스 계획을 얘기해주면 꺼리는 하나 만들어 줄 수 있겠구나.’

이처럼 조깅을 하면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머리 속으로 꼼꼼히 정리하는 버릇을 들인 건 대표로서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함이었다. 그 정리 벽은 달리기를 시작한 때부터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그에겐 매우 오래된 습관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로 들어선 객을 맞이한 건 조 사장만이 아니었으니, 유리 탁자 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유자차가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는 길에 바람이 찼을 터인데, 추운 날씨에 언 몸을 녹이는 데엔 유자차 만한 것이 없어요.”

조 사장은 회사를 찾은 객을 위한 차 대접에 평소 각별히 신경을 쓴다. 짧은 만남을 위해 회사를 찾는 이에게 방문의 성의를 표시하는 데엔, 좋은 차를 대접하는 것만한 것이 없다고 평소에 생각하던 터였다.

봄에 방문한 기자에게 내온 차는 곡우에서 입하 사이 차나무의 새싹을 따 만들었다는 작설차였다. 늦여름엔 중국의 운남성에서 생산했다는 발효차의 일종인 보이차를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 방문에선 유자청에 잣을 정성스레 띄운 따끈한 차를 내왔다.

“새해라 처리할 것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그렇게 말한 조 사장은 집무실 책상 우측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로 잠시 눈길을 돌렸다. 한 달 단위로 일정을 빡빡하게 적어 놓은 화이트보드엔, 미팅약속만 하루에 두 세 개씩 잡혀있었다.

“회사에서 머무는 시간은 평균해서 하루에 네 시간 가량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외부 일정을 소화하는데 거진 씁니다. 고객을 방문하고, 학교에 강연을 나가고, 또 최근엔 데이터베이스산업협회의 부회장겸 컨설팅산업분과 위원장을 맡는 바람에 시간을 더욱 잘게 쪼개어 쓰고 있어요.”

“회사 대표로서 안에서 처리할 일도 많은 텐데요. 외부 미팅에 그렇게까지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우선 실질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요.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사업 기회를 더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현장을 방문하지 않으면 고객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에, 비즈니스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고객과 직접 면대를 하다 보면 없던 사업의 기회도 창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발 품의 효과에 대한 조 사장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다른 이유는 조금 긴밀한 것인데, 얼굴을 직접 보고 얘기를 하면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사업은 참여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모호할 수 있어요. 이럴 경우 고객의 얼굴을 보고 얘기하면 가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 설명을 더 보태달라고 부탁했다.

“가부를 판단하기 혼란스러울 때는, 방문을 하지 않고 전화나 메일을 주고 받는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 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얼굴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면 가지고 있던 이런 저런 의문점을 제거할 수 있어, 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률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불확실성을 줄이고,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CEO로서의 책임감 역시 외부 활동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과 그들 가족의 수를 합치면 150명이 넘을 겁니다. 이들의 경제 생활을 생각하면 잠시도 한 눈을 팔 틈이 없어요. 사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들이 회사의 중심이 되어 내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촌각도 허비할 순 없어요.”

여기까지 하루가 바쁜 까닭을 설명한 조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방문한 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새로운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지난해 성과를 숫자로 정리해 주시죠.” 이에 조 사장은 지난해에 77억원 매출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 매출규모라면 DB컨설팅 업체로선 최상의 매출을 달성한 셈이었다.   /계속/

<데일리그리드>







저작권자 © 데일리그리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