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오링크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조영철 사장을 필자가 처음 만난 때는 웹 방화벽 사업을 인포섹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두 회사가 개최한 기자간담회 장에서였다.

삼성동의 코엑스 근처에 새로 지어졌다는 하이야트 호텔에서 열린 그날 간담회에 참석을 위해 전철역 출구를 나선, 필자는 한동안 호텔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방황해야 했다.

대개의 호텔은 입구 앞에 넓은 공간을 두어 주차장이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호텔은 대로변의 짧은 인도 끝에 여유공간 없이 바로 건물을 올려, 무심코 보면 디자인에 좀 신경을 쓴 일반 대형 빌딩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주최 측에 수 차례 전화 걸어 호텔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도, 입구를 찾는데 또다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 이 호텔의 출입구는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많은 장식을 두어 정문의 화려함을 손님에게 뽐내는 여느 호텔과 사뭇 달라, 필자는 유리문이 유리창인줄 착각을 한 까닭에, 입구를 찾지 못해 프론트 직원들을 원숭이 쳐다보듯 구경하며 유리문 밖에서 한동안 멀뚱멀뚱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때가 혹 3년 전 어느 날 이었는지, 아니면 5년 전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간담회 이후 시간이 꽤 흘렀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당시 간담회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 중 필자가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인포섹의 신수정 사장과 윤원석 이사 두 사람이다.

신 사장과는 첫 만남 이후에 ‘일에 있어서 마땅한 바’를 따져 신중히 행보하는 그의 스타일을 지켜보면서 인연을 성글게 이어왔다. 필자가 경험한 신 사장은 일의 선후를 잘 구분해 처할 바를 따져 몸을 두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신 사장의 스타일을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오상(五常)의 개념을 적용해보면, 다섯 가지 중 의(義)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니, 그와 올바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관계를 유지하면서 먼저 신의를 잃는 일은 없을 터이다.

윤 이사는 이런 저런 때를 쓰는 필자의 요구를 적절히 응대하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고 또한 스스로 지킬 것은 잘 지키니, 오상을 그에게 적용하면 예(禮)를 잘 알고 지키는 사람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니, 그와 올바로 관계 맺은 사람이라면 그 관계를 오래 그리고 즐겁게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다.

파이오링크의 조영철 사장에게 인터뷰를 청하며 먼저 연락을 하게 된 것은, 지난해 다소 정체되었던 웹 방화벽 시장의 올해 성장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해서였다.

간담회 당시 직급은 이사로 연구소장이란 직무를 맡고 있었던 그는 이제 파이오링크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조 사장과의 인터뷰는 엊그제(15일)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써가며 진행됐다. 오래 간만의 만남이라서 그랬을까, 조 사장과 인터뷰를 끝내고 전철을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내내, 당시 간담회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이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시절은 웹 방화벽이 시장에 소개된 초기였고, 제품을 실제로 고객이 받아들일지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웹 방화벽 무용론까지 제기하며 제품의 성공에 강한 회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양 회사가 웹 방화벽 사업을 진짜 열심히 해보겠노라며 기자들을 끌어 모아 간담회를 연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여느 기자들의 취재 방식과 달리 IT기술이나 IT관리의 관점에서 취재를 해 기사를 써댔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런 기사의 내용과 형식은 당시엔 처음 시도된 새로운 기사 형식이 이었고, 그래서 호기심을 가진 몇몇 기자들이 필자를 따라 하기도 했지만, 기술적인 글쓰기인지라 시장을 다루는 종래의 기사 형식보다 취재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기사 전달의 핵심 요소인 사실의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나머지, 글쓰기를 포기한 경우를 보기도 했다.

간담회를 시작하고 중간쯤에 필자의 질의가 시작됐다. 웹 방화벽이 당시 네트워크로 들어오는 패킷 처리에 어느 선에선 한계를 갖는다는 것과 즉 성능 이슈, 그리고 당시로선 새로운 컨셉인 방화벽이 서버 앞에 노일 경우 네트워크 설계의 변경을 가져와 관리에 혼선을 겪을 가능성 제기, 거기에 방화벽에 문제가 생길 경우 패킷을 그냥 넘기는 바이패스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등을 비롯해 응대에 다소 까다로울 수 있는 기술적인 질문들을 계속 해 나갔다.

거기에 웹 방화벽이 지속적인 정책 설정이 중요한 것이어서 보안 관리자들이 이런 정책의 설정의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관리 관점의 질의도 던져보았다.

물론 질의는 필자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내가 만난 기자들 중엔 질의와 글쓰기를 잘하는 매우 훌륭한 기자들이 있었으니, 지금은 폐간된 시사컴퓨터에서 활동하던 이상 기자, 그리고 역시 지금은 없어진 C넷에서 글을 쓰던 정진옥 기자, 현재 통신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디지털타임즈의 조성훈 기자가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글쓰기에 필요한 질문을 취재원에게 꼼꼼히 던지는 것을 좋아했고, 써놓은 글의 문장력도 매우 뛰어난 기자들이었다. 다만 지금 필자의 취재 바운더리에서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내가 이들의 질의내용과 글 쓰는 스타일을 좋아했다는 것이지, 서로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흩어져 제 갈 길을 간 이후엔, 어느 시점부턴 서로 안부 전화한 통 없는 그런 소원한 사이가 됐기 때문이다.

기자란 게 주로 혼자 움직이는 직업인지라 취재처가 바뀐 후엔 서로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방 멀어지는 사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마디 더, 지금 언급한 기자들 말고도 당시 훌륭한 기자 선생이 많았음을 말해두어야겠다.

각설하고 간담회에 대한 회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제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의 복잡한 질문이 들어간 이후에 간담회 장은 다소 어수선해졌다. 답변하기에 수월치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고 다만 상당수 개선됐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나, 당시로선 해결이 요원한 골치거리들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도 함께 존재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된 것은 간담회 사회자가, 그 전까지 별 말이 없었던 조 사장에게 필자의 질의에 응대할 것을 요청한 이후였다.

조 사장은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런 저런 필자의 질의에 대답을 이어갔다. 연구소장의 직책을 맡아 제품 개발을 지휘했던 그의 응답은 기술적인 것을 포함해 매우 상세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추가 질의에도 그가 대답했고 답변 속도 또한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 사장의 답변은 대개가 기술적인 내용이어서, 그의 말을 필자가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답변의 주요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파이오링크의 웹 방화벽은 시장에서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커버할 수 있는 기능과 성능을 충분히 갖추었고, 일부 지적 사항의 경우엔 가까운 시일 안에 해결이 될 것”이란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기에 그의 답변은 매우 꼼꼼하고 치밀한 정성스런 내용이었다.

또한 이번 인터뷰에서도 질문에 대한 거진의 답을 상세히 해주었다. 다만 필자의 질문이 드릴다운 형식이라서 몇 가지 질의엔 ‘고민 중인 사안이라서 시간을 두고 답을 주겠다’며 성심을 표했으니, 인포섹의 신 사장이나 윤 이사의 경우처럼 조 사장에게 오상의 컨셉을 적용하면, 지(知)를 잘 갖춘 이로 볼 수 있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와 만남을 재삼(再三) 가져도 해로울 바가 없을 터이다.

인터뷰에 임하는 조 사장의 표정은 간담회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그게 맘에 들어 필자가 “사장님, 예전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라는 다소 아부성 발언으로 인터뷰의 첫 운을 떼었다. “오래만입니다. 얼굴을 보니까 기억이 나는군요.” 조 사장이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이번 인터뷰의 다음 편은 지난해 실적과 올해 계획에 대한 다소 건조한 내용으로 글이 채워질 것이다.

<데일리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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