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배려

   인간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남에게 덕(德)을 베푸는 덕행에서부터 시작한다. 학문 연구자들은 인격수양을 위해 덕행을 배우고, 정치인들은 인심을 순화하고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해 덕치를 추구한다. 중국 진(秦)나라 말기 장량(張良)에게 병서를 전했다는 병법가 황석공(黃石公)도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덕을 닦는 것이 제일 우선이다[先莫先於修德].”라고 하였다. 덕이란 인간에게 진리와도 같은 것이니, 학문과 교육, 정치, 군사 등에 모두 필요한 것이다.

   덕은 동정과 배려를 베푸는 것이니 멀리 있는 사람들도 회유하여 모여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도덕원리에 근거한 행위들은 모두 인간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인(仁)이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인간사에 귀감이 되는 모든 덕행을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뛰어난 장수로서 기개를 떨친 이순신도 덕행을 몸소 실천한 분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은 평소에 원칙과 규정을 중시하여 매우 엄격했다. 하지만 그 내면은 오히려 감성적이면서 동정심과 배려심이 많았다. 주변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넘기질 못했다. 1583년 함경도 건원보(乾原堡) 권관(權管, 종9품) 재직 시 변방의 병사가 부모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가난한 형편에 가지 못하는 딱한 사정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을 내주었다. 손무(孫武)는 “병사를 자식처럼 사랑해야 함께 죽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 사례로써 이순신이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를 알만하다.

   이순신은 1589년 12월 정읍현감에 임명되어 부임해 가는데, 부인과 자식, 아우, 형수, 조카, 종 등 20여 명의 대가족을 함께 데리고 갔다. 이를 본 어떤 이가 복무규정에 어긋난다며 비난했다. 이에 이순신은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남솔(濫率, 관리가 제한 수 이상의 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의 죄를 지을지언정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조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겠소.”라고 말하였다. 이는 관리로서 복무규정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도리가 우선임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이순신의 남다른 인간사랑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순신은 이러한 인간사랑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백성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백성은 나라의 기둥으로서, 백성이 무너지면 나라도 위태로워진다. 이순신은 전쟁 중 작전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민정을 살피는 일을 소홀하지 않았다. 손무는 “용병술을 아는 장수는 백성의 운명을 책임지고 국가의 안위에 주도자가 된다[知兵之將, 民之司命, 國家安危之主也].”고 하였다(『손자』「작전」). 이순신은 군사와 백성의 고충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일기에 적었다.

   대저 변방의 중진(重鎭)을 한번 잃으면 그 해독은 심장부에까지 미치게 되니, 이것은 실로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계책으로는, 먼저 전례를 따라 변방의 방어를 견고하게 한 다음, 차츰 문제점을 조사하고 밝히어 군사와 백성의 고통을 구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가장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 《난중일기》 임진년 8월 28일 이후 - 

 옥포해전 이후 치열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방을 철저히 방어하고 군사와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군사들이 불안하면 군사력이 떨어지고, 백성이 불안하면 국가의 기반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특히 전란 중 백성들의 기근을 살피고 지방관리의 횡포를 처벌하고 피해가 심각한 지역의 군역을 면제해주었다. 무엇보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여 민생안전을 도모한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은 작전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항시 노력하였다. 한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로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음으로써 목민관의 도리도 다하고자 한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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