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대한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해남 화산~평호 도로개설공사 구간 내 유적’에서 기원 후 3세기부터 4세기에 조성된 마한 시기의 대규모 고분군이 확인되었다고 전했다.

해남 안호리·석호리 대지유적은 해남반도의 남서쪽 바닷가에 맞닿은 산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마한 시기에 조성된 5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매장시설은 100여기 정도의 목관묘, 직장묘(토광묘), 옹관묘(甕棺墓, 독무덤) 등이 약 100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분은 봉분 주위로 사다리꼴의 도랑(周溝, 주구)을 두른 마한 전통의 무덤 양식으로 중앙에는 목관묘 혹은 옹관묘를 안치하고 외곽에 옹관묘와 목관묘, 직장묘 등을 추가로 매장하였다. 고분은 대부분 도랑을 공유하면서 맞물리게 축조하고 있어 같은 집단의 공동 묘역들이 군데군데 조성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출토유물은 단경호(短頸壺, 목 짧은 항아리), 이중구연호(二重口緣壺, 겹아가리 항아리), 양이호(兩耳壺), 조형토기(鳥形土器) 등의 토기류와 함께 환두도, 철부(鐵斧, 철도끼), 철정(鐵鋌), 철도자 등의 철기류와 시신의 목에 걸었던 구슬류 등 200여 점 이상의 부장유물이 수습되고 있다. 부장 유물을 검토한 결과 고분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기원 후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해남반도에서 같은 시기에 조성된 해남 부길리옹관묘, 분토리고분군, 신금취락 유적 자료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해남 안호리·석호리 대지유적에 집단 고분군을 조성했던 주인공들은 백포만 일대에서 철기를 매개로 대외교류에 참여했던 마한 해상세력으로 판단되며, '일본서기'에 기록된 침미다례 집단의 실체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침미다례는 해남반도에 자리하였던 마한의 주요 세력으로 서기 369년 백제 근초고왕의 남정(南征) 과정에서 소멸하였다. 안호리·석호리 대지유적 고분군의 소멸 시기가 위 기록과 일치하고 있어 학계의 관심과 검토가 요구된다.

김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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