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터득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의 주역이었던 이순신은 우리의 역사에 불세출의 위인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이다. 범인을 초월하는 그의 위대성 때문에 현대인들은 4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자취를 기리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줄곧 마음속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리며 자신의 위안을 삼는다. 이처럼 그가 위기 때마다 첫 번째로 떠올리는 인물이 된 것은 치세를 위해 그와 같은 인물을 갈구하는 시대적인 부름이다.

   물론 이순신이 위대한 인물이 되기까지는 그만큼의 많은 노력이 따랐다. 오히려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모진 고난과 시련들이 그의 정신력을 강하게 만든 것이다. 만약 이순신이 그러한 어려움이 없이 평범한 생활을 했었더라면 그저 하나의 평범한 장수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을 근신과 절제로써 극복하며 수양의 계기로 삼을 줄 아는 현실초극의 자세가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다.

   이순신은 유학에서 터득한 수양하는 자세로 생활하여 유학의 이념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의 몸가짐부터 바르게 한 것이다. 낮에는 작전활동에 주력하고 어두운 적막한 밤에는 홀로 촛불을 밝히고 자신을 성찰하며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나라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암담한 현실에서 연속된 갈등과 번민만이 갈수록 그를 압박하기만 했다. 그러함에도 그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홀로 배의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아져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네(秋氣入海 客懷撩亂 獨坐篷下 心緖極煩 月入船舷 神氣淸冷 寢不能寐 鷄已鳴矣)” -《난중일기》 계사년 7월 15일 -

계사년 견내량(見乃梁) 해전을 마친 후 한산도 두을포(豆乙浦) 앞바다에서 가을 나그네의 회포를 느끼며 밤새도록 깊은 회상에 잠겼다. 여수 본영에서 한산도로 진영을 옮기고 해상의 전략기지를 세워 왜적의 해상진입을 차단하는 주력하였다. 전쟁 중의 고달픈 생활 속에서 새벽달을 보며 정신을 환기시켜주는 희열감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밀려오는 여명(黎明)의 물결에 또 다른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을 마감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쟁으로 인한 고독과 울분에 찬 참담한 생활일지라도 이순신은 항상 신독(愼獨)의 경지를 유지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모함을 받고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굳은 의지만은 끝내 관철시켰다. 외롭고 고단한 혼자만의 경지에서 오히려 우주에 관통하는 묘책을 얻어 급기야 백전백승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중국 촉한시대의 정치가 제갈량은 “전화위복하고 위기에 임해 승리를 이룬다면 바로 그를 지장(智將)라고 한다.[轉禍爲福, 臨危制勝, 此之謂智將].”고 하였다(《장원》〈장재〉). 어떠한 돌발 상황이 닥칠지라도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승리로 이끈 이순신이야말로 진정한 지장(智將)이었던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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