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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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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난중일기》 교감(校勘)의 상황정본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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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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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이 7년간의 전쟁 중에 직접 체험한 사실들을 기록한 진중일기이다. 친필 초고본을 보면 급박한 전쟁을 치룬 해일수록 필기상태가 심하게 흘려져 있다. 특히 《임진일기》와 《계사일기》, 《정유일기》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큰 전쟁이 일어났던 해에 작성된 일기는 분량이 일정하지 않고 수정과 삭제가 반복되고 누락과 훼손상태가 심하다.

  1693년(숙종 19) 이후 쯤 미상인에 의해 이순신과 관련된 사료들을 모은 필사본 《충무공유사》가 만들어 졌다. 여기에는 《난중일기》를 초록한 〈일기초日記抄〉가 있는데, 특히 초고본에 없는 일기 32일치가 들어 있다. 필자가 2007년 이 책의 전편을 해독하여 실체를 드러냈다. 불과 325일분의 일기를 담고 있으나 일종의 교감형태로 첨지(籤紙)를 붙여 적은 글자들도 있다. 이은상은 이 〈일기초日記抄〉의 무술일기를 인용하여 초고본의 누락부분을 보완하여 국내 최초로 일부나마 교감을 하였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원임 직각(直閣) 윤행임과 검서관 유득공에게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할 것을 명했는데, 이때 《난중일기》에 대한 해독작업이 처음 이루어졌고 예문관에서 정유동주자(丁酉銅鑄字)로 간행하였다. 이때 정조는 “이번 일은 충의를 드높이고 공로에 보답하며 무용을 드러내고 공적을 표창하려는 것이다.”라고 하며 내탕전(內帑錢)을 인쇄비로 지원하였다.

  이렇게 간행된 전서본의 《난중일기》를 초고본과 비교하면 아쉽게도 내용상의 차이가 많다. 일부 내용이 누락되거나 산절되고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짜에 있어서는 초고본보다 더 많고 초고본에 없는 내용도 실려 있다. 전서본의 판본이 비록 불완전한 형태로 간행되었지만, 국가사업으로 최초로 간행된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 회장)가 《난중일기》전편을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를 간행했다. 글자의 위치와 크기를 그대로 살려 지우거나 삭제한 글자를 그대로 표기하고 초고본의 원형에 가까운 해독을 하였다. 그러나 원문의 오기는 교감하지 않았고 오독한 글자도 있었다. 이 역시 판본상의 문제가 있지만 후대에는 이것이 전서본과 함께 《난중일기》판본의 전범이 되어 왔다.

   본래 교감(校勘)이란, 판본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교정(校正) 작업이다. 중국 북경대학의 예기심(倪其心)교수는 “교감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문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存眞復原)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교감은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을 확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난중일기》정본을 만들기 위해 〈일기초〉·전서본·《난중일기초》등의 이본들을 모두 정리하여 비교분석하였다. 초고본의 글자수는 75,453자이고 전서본의 을미일기를 합하면 88,728자이며, 이 중에서 필자가 새로 해독한 글자는 849자이고 36일치를 발굴했다. 전서본과 《난중일기초》를 비교하면 2천여 곳의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적시하여 모든 오류를 바로잡아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간행한 것이다.

   특히 고유명사에서 동음가(同音價)를 사용한 한자표기와 글자형태가 비슷하나 글자가 다른 동형이자(同形異字)를 새롭게 교감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동아일보사 2004)에서부터 시작하여 최근 개정판을 내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이처럼 난중일기 교감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과를 이루어 놓은 상태에서 간혹 필자의 연구물을 보고 《난중일기》를 번역한다는 이도 있다.

   《난중일기》교감작업은 결코 임진왜란사만을 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초서와 고전을 수십 년 이상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전공자가 아닌 소위 이순신매니아들이 이순신관련 책을 쉽게 집필하고 있다. 더욱이 기존에 바르게 잘 되어 있는 내용을 오독이라고 주장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초서 해독과 교감에 관한 문제는 고전연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다. 수십년 이상 한문문리를 터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청나라 때 학자 단옥재(段玉裁)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바르게 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 심각한 혼란을 초래한다.”고 했다. 이는 고전번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말이다. 다년간 연구해온 성과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를 도용하거나 근거 없이 폄훼하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이순신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글: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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