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校勘) 검증방법

 《난중일기(亂中日記)》의 친필 초고본을 보면 급박한 전쟁을 치룬 해일수록 필기상태가 심하게 흘려져 있다. 특히 큰 전쟁이 일어났던 해에 작성된 일기는 분량이 일정하지 않고 수정과 삭제가 반복되고 누락과 훼손상태가 심하다. 1693년(숙종 19) 이후 미상인에 의해 작성된 이순신과 관련된 사료들을 모은 필사본 《충무공유사》는 매우 중요한 책이다. 여기에 들어 있는 〈일기초日記抄〉에는 첨지(籤紙)를 붙여 적은 일종의 교감형태로 적은 글자들이 있다. 이은상은 이를 인용하여 무술일기의 일부를 처음으로 교감하였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원임 직각(直閣) 윤행임과 검서관 유득공에게 《이충무공전서》 간행을 명했는데, 이때 《난중일기》에 대한 해독작업이 처음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전서본의 《난중일기》를 초고본과 비교하면 아쉽게도 내용상의 차이가 많다. 일부 내용이 누락되거나 산절되고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짜에 있어서는 초고본보다 더 많고 초고본에 없는 내용도 실려 있다. 전서본의 판본이 비록 불완전한 형태로 간행되었지만, 국가사업으로 최초로 간행된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 회장)가 《난중일기》전편을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를 간행했다. 글자의 위치와 크기를 그대로 살려 지우거나 삭제한 글자를 그대로 표기하고 초고본의 원형에 가까운 해독을 하였다. 그러나 원문의 오기는 교감하지 않았고 오독한 글자도 있었다. 이 역시 판본상의 문제가 있지만 후대에는 이것이 전서본과 함께 《난중일기》판본의 전범이 되어 왔다.

   본래 교감(校勘)이란, 판본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교정(校正) 작업이다. 중국 북경대학의 예기심(倪其心) 교수는 “교감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문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存眞復原)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교감은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을 확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난중일기》정본을 만들기 위해 〈일기초〉·전서본·《난중일기초》등의 이본들을 모두 정리하여 비교분석하였다. 전서본과 《난중일기초》를 비교하면 2천여 곳의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적시하여 모든 오류를 바로잡아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간행한 것이다.

   지난 2013년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이순신이 세계적인 인물로 조명을 받게 되면서부터 《난중일기》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숭모정신이 지대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학생과 일반인들이 《난중일기》를 많이 읽고 있다. 수준 높은 독자들은 어느 책이 양서인지 잘 파악하고 있다. 현재 4차례 개정한 《교감완역 난중일기》에 대해서는 새로 발굴한 38일치와 문헌고증내용을 많은 고전전문가들이 높이 평가하였다.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에 실린 전적문화재류 DB내용은 모두 교감되지 않은 원래 초고상태로 올려져 있다. 이에 대해 굳이 말하고자 한다면, 학회지에 투고하여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감학이란 1, 2년 공부해서 될 일이 아니고 수십 년 이상 고전연구를 해야 한다. 전문성이 결여된 의견과 주장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국내 많은 연구자와 학자들은 학회를 통해 학문적인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중국 청나라 때 학자 단옥재(段玉裁)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바르게 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 심각한 혼란을 초래한다.”고 한 말은 연구자들에게 항상 절실한 교훈이 되어 주고 있다.

    글: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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