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의 중요성
전쟁에서는 서로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와 상대를 정확히 진단할 때 승패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항시 전쟁 참모들을 동원하여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였다. 중국 춘추시대 병법전문가 손무(孫武)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진다.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하였다(《손자》〈모공〉). 이순신은 이를 만고불변의 이론이라고 평하였다.《난중일기》
유익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이 많은 이들의 제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秦)나라 말기의 은사 황석공은 “널리 배우고 간절히 묻는 것이 널리 아는 방법이다[博學切問所以廣知].”라고 하였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여 그들에게 묻고 배워야 한다.
이순신은 37세 때 발포만호가 되어 최초의 수군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전라지역의 해상정보를 익혔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후 전라좌수사에 부임하고서 왜적에 대한 방어임무가 막중함을 알고 본격적으로 해상정보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였다. 특히 해상 지형과 조수(潮水)상황, 그리고 바닷길을 파악하는데 많은 전라연안의 주민들이 동원되었다. 날마다 전라좌수영 뜰에 포구의 주민들을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주민들은 밤새도록 일을 하며 많은 대화를 하였다.
이순신은 여러 날 이러한 방법으로 해상요새에 대한 정보를 터득하였다. 그 결과 전쟁할 때 왜적들을 험한 데로 유인해 몰아넣었는데, 그때마다 왜선들이 침몰되어 힘들여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였다. 한산도 해전과 명량해전 때에도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낮은 평민일지라도 해상정보를 잘 안다면 윗사람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순신은 해상을 관장하는 장수로서 오히려 지역민들을 길잡이로 삼았고, 그들이 전해준 해상 요새에 대한 정보는 전쟁 작전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이 모두 이순신이 자만하지 않고 주민에게 묻고 배우려고 노력한 대가이다. 손무는 “고을의 길잡이[鄕導]를 이용하지 않으면 지리의 이점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