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그리드

노승석의

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메일
[이순신의 窓]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무술년 새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24  
트위터 페이스북 google 링크드인 밴드 카카오톡

   420년 전 정유년은 이순신에게 있어서 매우 파란만장한 해였다. 개인의 사정이 용인될 수 없는 전쟁 상황에서 그것도 모친의 상중에 출사(出仕)하라는 기복(起復)의 명은 그의 처절한 마음을 더욱더 압박하였다. 모친에 대한 효(孝)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충(忠)의 실현은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 국운을 구원하는 중차대한 일이었던 것이다. 일에는 경중(輕重)과 선후(先後)가 있었지만, 설욕(雪辱)해야 한다는 모친의 당부는 이순신이 나아가 전쟁하는데 항상 원동력이 되었다.

  정유년 9월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치룬 뒤, 왜적이 아산마을을 습격하였다. 이때 셋째아들 이면(李葂)이 모친(온양방씨)을 모시고 아산집에 가 있었는데, 왜적들이 마을을 분탕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서 공격하다가 길에서 21세의 나이로 복병의 칼을 맞고 죽었다. 이면은 이순신을 가장 많이 닮아서 이순신이 가장 아낀 아들이다. 이순신은 이 비보를 한 달 뒤 쯤 알게 되었다. 10월 14일 저녁 천안에서 온 어떤 이의 편지를 받았는데, 둘째 아들 이열(李䓲)이 겉면에 “통곡(慟哭)” 두 글자를 써놓았다. 이때 이순신인 자신의 심경을 심사형존(心死形存,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음)이라고 하였다.(《난중일기》정유, 10, 14)

   그후 이순신은 벽파진에서 목포에 있는 고하도(高下島)로 진영을 옮겨 군대를 정비하고 군량 비축에 힘썼다. 이때 명량대첩의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고작 은자 20냥을 받았는데, 선조로부터 전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명나라 장수 경리(經理) 양호(楊鎬)는 붉은 비단을 보내어 치하하였다. 이해 겨울 선조는 이순신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서를 내렸다.

 “개인 사정은 이해되나 나랏일이 한창 다급하니, 상례에 따라 소식(素食)만 하지 말고 육식을 하여 기력을 회복하고 전쟁에 힘쓰라.”

상을 당한 상제가 복상의 예법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고정불변의 원칙으로 ‘경(經)’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에 긴급한 사태가 있을 때는 목적달성을 위해 규정을 변통할 수 있다. 이것이 임기응변의 방편으로 ‘권(權)’이다. 선조는 이러한 철저한 논리로 이순신에게 소식만하지 말고 전쟁을 잘 할 수 있도록 육식을 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그후 이순신이 육식을 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정유년 세모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 이순신은 한해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비통한 심경으로 한해를 마감했다. 억울한 옥살이, 파직과 백의종군, 모친상, 아들상 등 일련의 처절한 사건들이 이순신에게 자신의 암울한 심경을 심사형존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으면 사물을 접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무감각하고 무의미한 형체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돌아보건대 지금의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에서 우리는 물아(物我) 대해 얼마나 올바로 인식하고 있을까. 정도와 정의가 가려진 채 양두구육(羊頭狗肉)이 판치는 현실에서는 설사 올바른 사유를 갖고 있더라고 정사(正邪)의 변별이 어려울 것이다. 지선(至善)을 지향하는 일관된 생각도 그저 심사형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무술년(戊戌年)은 주역으로 보면, 손상이하(巽上離下)의 풍화가인(風火家人)괘䷤에 해당한다. 장녀가 위에 있고 중녀가 아래에 있으며 2효(爻)가 동하니 육이(六二)의 효사는 집안에서 음식을 장만하면 길하다는 것이다. 오직 외물의 현상에 슬기롭게 대응하며 내실을 기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

[오피니언 리더가 만드는 심층뉴스 '데일리썬'] [IT보고서 총집합 '마이닝독']
노승석의 다른기사 보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google 링크드인 밴드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노승석의 최근기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중구 수표로 72-13, 401호 (수표동, 대한전기회관)   |  대표전화 : 070-7706-9592, 02-749-3205  |  팩스 : 02) 749-3207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 00378  |  발행.편집인 : 장영신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2007.05.30  |  청소년보호책임자: 심재형
Copyright © 2011 데일리그리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rid@dailygri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