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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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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 작은 성의로 큰일을 이루다부채가 전쟁요청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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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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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주변인들과 항상 친분을 쌓아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남다른 관심과 배려로 상대를 대하면 그도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서로 화합을 이룬다면 조난 시에 쉽게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각별한 성의를 보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에 주변인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큰 부담 없는 작은 선물을 보내주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할 때 반드시 부채를 만들어 선물로 보냈다. 평소에 그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여 전쟁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갑오년 7월 10일 순변사에게 별선(別扇) 15자루와 기름 먹인 부채(油扇) 10자루, 옻칠한 부채(漆扇) 5자루를 보냈고, 병신년 7월 9일에는 서울 가는 사람이 가지고 갈 부채를 만들 대나무를 채벌할 일로 박자방(朴自邦)을 남해로 보냈다.

             <부채를 보낸 목록>

  • 백첩선(白貼扇, 큰부채) 358 자루
  • 별선(別扇) 453 자루에서 7월 10일 순변사에게 15자루를 보냄.
  • 기름 먹인 부채[油扇] 590자루에서 7월 10일 순변사에게 10자루를 보냄.
  • 옻칠한 부채[漆扇] 58자루에서 5자루를 순변사에게 보냄.
  • 부채 50자루에서 10자루를 순변사에게 보냄.     

                                                  -《난중일기》갑오년 11월 28일 이후 기록 -

   한산도에 작업장을 만들어 자주 공인들을 불러다가 부채를 만들게 하였다. 정유년 당시 전라도 절도사 황신(黃愼)이 어느 날 통제사 이순신을 한산도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순신이 천막집(棚家) 수십 칸을 짓고 기술자들을 모아서 기구들을 만들고 있었다. 황신이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만듭니까?”라고 하자, 이순신이 웃으며 말하기를, “인사를 하려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황신은 남쪽의 왜군을 정벌할 때에 중앙관료들에게 선물하려는 뜻을 알고서 한바탕 웃었다. 이순신은 항상 자신을 음해할 것을 대비하여 조정 대신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중국 서진(西晋)시대 때 병법에 뛰어난 학자 두예(杜預)는 자신을 방해할 것이 염려되어 당시 대신들에게 항상 예물을 보냈다. 그 후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에 임명된 뒤 형주(荊州)의 군사들을 지휘하여 오吳나라를 평정하였다. 이순신도 수군을 통제하면서 틈만 나면 공인(工人)들을 모아 놓고 부채 등을 만들어 조정 대신들에게 선물하였다. 이에 전쟁을 원만히 수행함으로써 마침내 중흥의 공을 이루어냈다. 성호 이익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군을 통제하면서 역시 틈만 나면 공인들을 모아 놓고 부채 등을 만들어 두루 경과 재상에게 선물하였다. 마침내 중흥의 공을 이루니, 이에 천고토록 지사(志士)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 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두예와 이순신>-

   이순신은 두예처럼 작은 선물로 나라를 위한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물론 대신들과 친분을 쌓으려는 점에서 사익을 위한 일이라는 오해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앙관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직위를 보전하여 왜적을 평정하는 공을 세우고자 했을 뿐, 결코 아첨하고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오직 국사를 위한 일이었기에 오히려 감동할 일이다. 이순신에게 있어서 부채란 오직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수단이자 전쟁의 요청을 알리는 홍보수단이었던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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