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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의

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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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 인내심으로 위기를 극복하다뽕나무 잿물로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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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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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일이든지 중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항상 어려운 고비가 따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다른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각오로 노력해도 더욱 어려운 시련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안녕을 뒤로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러한 부단한 노력으로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 나갈 때 끝내 자신의 의지는 관철될 것이다.

  1592년 5월 29일 묘시 경 이순신은 홀로 수군 23척을 거느리고 남해군 미조항을 출발하여 곧장 노량露梁에 도착했다. 원균은 3척을 거느리고 하동선창을 거쳐 만나기로 한 장소에 와 있었다. 그에게 왜적이 정박한 곳을 물으니, “왜적들은 지금 사천선창(泗川船倉, 사천 용현 선진리)에 있다.”고 했다. 이순신이 바로 그곳에 가보니 3백 여명의 왜적들이 이미 육지로 올라가서 산 위에 장사진을 치고, 그 아래에 배를 줄지어 매어 놓았다.

   왜적은 높은 지대에 있고 아군은 낮은 지대에 있어서 지세가 불리했다. 이에 이순신이 왜적들을 유인하여 외양으로 내려오게 하고는 거북선을 출동시켜 천天·지地·현玄·황黃자의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아대고, 긴 화살·짧은 화살·불화살을 난사하였다. 왜적들은 중상을 입고 쓰러진 자나 부축하며 달아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이때 이순신은 군관 나대용羅大用과 함께 적이 쏜 탄환을 맞았고, 부하들과 적진을 오가며 왜선 13척을 불태우고 물러나왔다.

   이순신은 이때 심한 관통상을 입었는데도 오히려 자신은 그것이 죽을 만큼의 중상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기록했다. 1592년 5월 29일 묘시에 일어난 사천해전을 《주역》의 선천역으로 풀어보면, 본괘는 산화비山火賁괘이고 변괘는 중산간重山艮괘이다. 체괘는 간토이고 용괘는 이화이다. 체호괘는 진목이고 용호괘는 감수이고 변괘는 간토이다. 용괘인 이화가 체괘인 간토를 도와주니, 남쪽에서 기쁜 소식이 있다. 체호괘인 진목이 체괘를 극하니 등과 뼈를 다친다. 간토는 등과 뼈를 의미한다. 체괘가 용호괘인 감수를 극하니 적을 크게 물리친다. 변괘는 체괘와 같아 괘기가 왕성하니 먼 바다로 나가지 않고 육지 가까이로 가야 이롭다. 조선 수군들이 육지에 있는 왜군을 외양으로 유인하니 전쟁하기에 이롭다. 특히 이화에 해당하는 거북선이 출동하니 괘기를 도와 더욱 유리하다. 이순신은 교전 중 흉부에 관통상을 입어 뼈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지만, 왜군을 산언덕에 인접한 외양으로 유인하여 크게 물리쳤다.

   그후 이순신은 연일 갑옷을 착용하여 헌 상처가 뭉그러지고 고름이 줄줄 흘렀다. 그래서 옷을 입지 못하고 밤낮으로 뽕나무 잿물로 상처를 씻었으나 차도가 없었다. 하루속히 완쾌되어 출동해야 하지만, 깊은 상처를 치료하는 몸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전쟁업무를 수행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자주 북쪽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분발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먼저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나아갔다가 탄환에 맞아 뼈를 다친 자리가 매우 깊었습니다. 비록 죽을 만큼 다치지는 않았으나 어깨의 큰 뼈를 깊이 파고 들어가 상처가 뭉그러지고 고름이 줄줄 흘러 아직도 옷을 입지 못하고 있으며, 뽕나무 잿물로 밤낮을 이어가며 씻고, 온갖 방법으로 치료하였지만 아직도 낫지 않았습니다.
奮不顧身, 先冒矢石, 中丸犯骨甚重, 雖不至死傷, 深犯肩大骨, 孔穴爛破, 惡汁長流, 未能著衣, 桑灰水連日夜浴洗, 百爾調治, 尙未差效.

-《난중일기》계사년, 3월 22일 이후-

치열한 전쟁 속에서 전라도 연안이 차츰 적의 소굴이 되어가자, 백성들은 불안한 나머지 평안도와 황해도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려고 하였다. 민심이 수습되지 못하고 민생이 피폐한 상황 속에서, 군역을 기피하는 일이 속출하여 모자란 병력을 충원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이순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부상 입은 몸으로 전쟁을 감행했고, 이후에 치룰 더 큰 전쟁을 대비하기에 더욱 만전을 기했다.

   글 : 노승석 이순신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 노승석의 난중일기 연구 성과 -

   국내 최초 난중일기 완역본 출간(동아일보사, 민음사, 여해)

  《충무공유사》 완역(2007), 일기초에서 32일치 일기 확인.

   홍기문의 한글본《난중일기》책자 처음소개(kbs, 2013)

   이순신이 나관중의《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에서 인용문 찾음.(2014)

    난중일기 교감 사항(200 여 건)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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