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K인재교육원장 노익희

이기기 위해서 선(善)과 악(惡)을 구분 안하는 이들이 많아

613선거가 목전에 있다. 이미 선거운동으로 거리가 시끌법석하고 여기저기서 음모가 난무하고, 이기기 위해 선악을 구별 안하는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울화까지 치밀게 한다. 하물며 피해의 당사자들이나 한 길을 걸어 걸어 목표점을 목전에 둔 이들이야 오죽하랴.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 랑케는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 지상과제로 삼고 오직 사실로 역사적 진실을 써야 한다"고 정의했고, 금세기에 크로체나 콜링우드는 "아무리 먼 시대의 역사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E.H.카는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선거를 앞두고 공천 휴유증과 비방과 정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후보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정치하는 이들에게 역사의식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올바른 인재가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양한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성숙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는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 더욱이 서로 부단히 대화하고 끊임없이 도량으로 상호 작용해야만 한다. 과거 속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승자로 인정됐고 나라는 흥했다.

'부단한 상호작용과 끊임없는 대화로'

7개국의 크고 작은 나라가 서로 패권을 다투던 중국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을 이룩한 나라는 진(秦)나라였지만 진나라는 원래 7개국 중 약소국에 속했었다. 이러한 진나라가 강대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원인 중 출신국을 따지지 않는 인재등용정책도 큰 요인이었다.

그러나 진나라도 처음부터 타국 출신의 인재들에게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왕족과 대신들이 타국 출신 관리들을 추방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후에 진나라 승상(丞相)이 된 이사도 초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추방될 인물 명단에 들어 있었다. 추방될 위기에 처한 이사는 추방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내용중에 '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라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클 수 있고, 큰물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조차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깊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크고 강성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출신을 따져 인재를 가려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진왕은 이사의 의견을 수용하고, 파격적으로 그를 승상에 임명했고 이후 많은 인재들이 진나라로 모여들었다. 역사는 진나라가 이때부터 강성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진나라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데는 인재가 초석이 됐을 것이다.

필자는 기자로 일하면서 도량과 아량이 넓고 깊은 사람들이라 여겼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만 공존하고 성취하려는 이들을 보고 크게 놀랐었다. E.H.카만큼이나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어 보이는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도량 없이 세상을 사는 것으로만 보였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많은 이들이 상실감에 빠져 있고, 역사의식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입신양명만을 위해 달리는 이들에게서 과연 도량을 찾을 수 있을까?

'도량의 지혜로 인재 만들어야'

몇 년 전 노르웨이의 한 젊은이는 다른 인종과 종교, 그리고 문화에 대해 정신병적 편견에 사로 잡혀 연쇄테러를 저질렀다. 그러나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범인에 대한 분노 대신 평화와 화합에 대한 염원과 다짐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추모제에 참석한 하콘 왕세자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지만 관용과 자유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추모를 위해 들고 온 장미꽃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해와 관용으로 발전하는 역사야말로 최고의 역사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線)'의 역사 속에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를 남긴 영웅 한신의 도량을 가진 이들을 국민들은 기다린다. 불우하던 젊은 시절 시비를 걸어오는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나갔다는 그가 초나라 왕이 되어 금의환향 했을 때 그 무뢰배를 측근 관리로 임명했다. 한신 역시 불우한 시절 비슷한 모욕을 당한 일이 많아 그들을 안심시키고 적으로 돌아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훗날 한신은 고향으로 돌아와 "나는 그 무뢰배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런 철없는 행동을 했다고 해서 죽일 수는 없었다. 내가 그의 죄를 용서한 이상 그의 기백을 살리지 않을 수 없어 관리로 임명한 것이다." 한신같은 도량을 가진 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조용히 바라봐야 한다. '사소한 잘못을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이 도량'이라고 가르쳤던 순자(荀子)같은 지도자들이 불을 일으키듯 나와야 한다.

같은 민족(民族) 남과 북이 만나 새로운 평화(平和)의 시대를 열고 있는 작금이라 더 그렇다. 반대(反對)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자격이 없는 후보들이 나와 이기기 위해서는 선(善)과 악(惡)을 구분 안하는 추악함을 보여주는 것을 추방하기 위해 더 그렇다.

 

   글쓴이 노익희?

- 사단법인 한국언론사협회 공동회장(전)

- 독서신문/이뉴스투데이 취재본부장(전)

- BUK인재교육원장(현)

 

 

 

노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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