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호 강사

[데일리그리드=장영신 기자] ‘자기 성찰’이라는 키워드가 요즘처럼 각광받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힐링’, ‘명상’, ‘스트레스’, ‘트라우마’, ‘자아 정체성’, ‘행복’과 같은 단어들을 즐겨 사용하면서 ‘온전한 자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생생한 현장을 찾아가봤다.

오후 7시에 시작한 수업에 십여 명의 수강생들이 강사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년을 훌쩍 넘긴 분은 물론이고 30대, 40대, 50대, 그리고 심지어는 중학교 1학년 학생도 있었다. 은평뉴타운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 수업의 현장이다.

강좌의 제목은 ‘나에게 쓰는 편지’다. 18년간 자서전 쓰기 전문 강사로 활동해 온 ‘민경호’ 강사가 강좌를 맡아 12회기를 진행한다. 기자가 갔을 때는 11회기 종강이었다. 12회기는 출판기념회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진도를 나가는 수업은 11회기로 끝난다.

강좌의 제목은 ‘나에게 쓰는 편지’이지만 실제 내용은 ‘자서전 쓰기’라고 한다. 자서전을 쓰되 편지 형식으로 접근하는 글쓰기란다. 보통 일반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되면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겠지만, 편지 형식으로 쓰면 더 편하고 쉽게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자서전 쓰기의 컨셉을 잡았다고 한다. 나에게 쓰는 편지을 비롯해서 부모에게, 스승에게, 감사할 사람에게, 용서할 사람에게,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다보면 이것 자체가 자신의 자서전이 된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있길래 궁금해졌다. 보통은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쓰는 것을 자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현재 ‘자서전 쓰기’는 전국 학교의 정규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자서전 쓰기’를 배워야 하며 수행평가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서전이라는 것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비망록의 성격이 강한 글이라서 그냥 사고(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금한 것이 더 많아져서, 어떻게 이런 강좌를 하게 되었는지 강사에게 물어봤다.

“제가 자서전 쓰기 강좌를 시작한 것을 얘기하자면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실버타운이나 복지관 등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을 했는데, 제가 막상 지도하다보니 이 일은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강사료도 받지 않고 무료로 재능기부를 했지만, 이제는 지자체나 도서관 등 많은 기관에서 불러주셔서 강사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이제는 전국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앞으로 더 보급되어 많은 분들이 동참하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흔히들 ‘자서전’이라고 하면 ‘위인전’을 떠올리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선뜻 자서전 쓰기에 도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서전은 위인전이 아니라 본인이 살아온 삶의 기억들을 반추해보며 사건을 하나씩 연결 지어 생각해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에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큰 줄기를 잡아보는 작업이지요. 본인이 경험한 사건들은 하나 씩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하지만 그 사건들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개인의 역사이고 그 안에는 일정한 패턴과 맥락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엮어내는 작업이 바로 자서전 쓰기입니다.”

나이와도 상관없고 성별이나 직업도 관계없다면 그야말로 전 국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자서전을 썼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자아정체성 발견’과 ‘심리 치유’라고 한다. 이것은 요즘 불고 있는 ‘자기 성찰’ 컨셉과 딱 맞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될 듯싶다.

실제 수업 현장에서 강사가 진행하는 내용을 보면 단지 ‘쓰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활용하여 인문적 소양을 쌓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 회기는 두 시간으로 진행되는데 1교시에는 이론, 2교시에는 실습을 한다. 이론 시간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여 자서전 쓰기에 필요한 것들을 학습하고, 실습 시간에는 숙제 발표와 토론, 그리고 자기의 인생 이야기 토크가 이어진다. 실제로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도 이해하게 되고 세대 간의 격차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자서전을 쓰는 목적이나 이유도 다양할텐데 몇 사람에게 불어봤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 실력을 다지고자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자 참여했다고 한다.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읽고 이러한 강좌에 참여하는 이유가 개개인 모두 다를 수 있으나 공통점을 찾자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민경호 강사가 원래 즐겨 사용하는 자서전 쓰기 강좌의 제목은 ‘세상을 바꾸는 자서전 쓰기’라고 한다. 전 국민 모두가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면 이 나라와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뀔 거라는 확신을 제목에 담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더 자서전 쓰기 강좌가 더 많이 보급되어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어놓으면 세상의 모습도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장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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