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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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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부채로 전쟁지원을 요청하다화합 -구공조선鳩工造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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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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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주변인들과 항상 친분을 쌓아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남다른 관심과 배려로 상대를 대하면 그도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여 서로 화합하게 되면 조난 시에 쉽게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각별한 성의를 보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에 주변인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작은 성의를 담은 선물을 보내주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할 때 반드시 부채를 만들어 선물로 보냈다. 평소에 그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여 전쟁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난중일기》갑오년 7월 10일자를 보면, 순변사에게 별선別扇 15자루와 기름 먹인 부채油扇 10자루, 옻칠한 부채漆扇 5자루를 보냈고, 병신년 7월 9일에는 서울 가는 사람이 가지고 갈 부채를 만들 대나무를 채벌할 일로 박자방朴自邦을 남해로 보낸 내용이 나온다.
 
  전란중에 이순신은 한산도에 작업장을 만들어 자주 공인들을 불러다가 부채를 만들게 하였다. 그 당시 전라도 절도사 황신黃愼이 어느 날 통제사 이순신을 한산도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순신이 천막집棚家 수십 칸을 짓고 기술자들을 모아서 기구들을 만들고 있었다. 황신이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만듭니까?”라고 하자, 이순신이 웃으며 말하기를, “인사를 하려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황신은 남쪽의 왜군을 정벌할 때에 중앙관료들에게 선물하려는 뜻을 알고서 한바탕 웃음을 지었다. 이순신은 자신을 음해할 것을 대비하여 조정 대신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수군(水軍)을 통제하면서, 역시 틈만 나면 공인(工人)들을 모아 놓고 부채[扇箑] 등을 만들어 두루 경(卿)과 재상에게 선물하였다. 마침내 중흥(中興)의 공을 이루니, 이는 천고토록 지사(志士)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 
                                                                       - 이익, 《성호사설》<두예와 이순신>-

  중국 서진西晋시대 때 병법에 뛰어난 학자 두예杜預는 자신을 방해할 것이 염려되어 당시 대신들에게 항상 예물을 보냈다. 그 후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에 임명된 뒤 형주荊州의 군사들을 지휘하여 오吳나라를 평정하였다. 이순신도 수군을 통제하면서 틈만 나면 공인工人들을 모아 놓고 부채 등을 만들어 조정 대신들에게 선물하였다. 이에 전쟁을 원만히 수행함으로써 마침내 중흥의 공을 이루어냈다. 

  이순신은 두예처럼 작은 선물로 전쟁 중에 나라를 위한 일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물론 대신들과 친분을 쌓으려는 점에서 사익을 위한 일이라는 오해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앙관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직위를 보전하여 왜적을 평정하는 공을 세우고자 했을 뿐, 결코 아첨하고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오직 국사를 위한 일이었기에 오히려 감동할 일이다. 이순신에게 있어서 부채란 오직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수단이자 전쟁의 요청을 알리는 홍보수단이었다. 
  
  이순신이 순찰사에게 부채를 보낸 날짜가 갑오년 7월 10일인데 이를 주역으로 풀면 본괘는 수지비水地比괘䷇이고 변괘는 풍지관風地觀괘이다. 체괘가 곤토☷이고 용괘가 감수☲이다. 체괘인 곤토가 용괘인 감수를 극하니 길하다. 체호괘인 곤토와 용호괘인 간토☶가 체괘와 오행이 같으니 괘기가 왕성하다. 이는 뭇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도적을 잡는 상이다. 체호괘와 용호괘의 토기가 강하다. 가까운 공간에서 예물을 갖추었다. 변괘인 손목☴이 체괘를 극하니 동남방의 사람에 의해 일을 도모한다. 이순신이 많은 고관대작들에게 부채를 선물로 보낸 것은 전쟁임무를 원활히 수행하여 많은 왜적들을 토벌하기 위한 일이었다. 한산도의 작업장에서 부채를 만든 공인들은 이순신을 도와 전쟁을 수행하는데 일조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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