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고증의 필요성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7년 동안 오고간 유적지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매우 많다. 그중에서 《난중일기》에 나오는 대표적인 유적지를 손꼽아보면 대략 5∼6백 여 곳이 되는데, 특히 정유년에 백의종군을 하면서 지나간 곳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크기 때문에 최근에는 해당 지자체의 노력으로 고증을 통해 각 구간에 지표를 세우기도 했다.

   최근에 필자는 고지도와 관련 사료를 분석한 뒤 이순신의 백의종군로를 수차례 탐방해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번으로 4백 여년 전의 지형을 찾는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막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한편 들기도 했다. 실제 현장을 찾아갔을 때 문헌적인 이론에서 확인되는 장소가 현지 해당 지역에서 세거(世居)하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와 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표시된 백의종군로 이정표가 과연 정확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백의종군로를 정확하게 고증하기 위해서는 우선 1차 사료인 《난중일기》와 고지도를 토대로 분석하고, 현지에 거주하는 향토사학자와 그 지역의 원로분들의 의견을 참고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일일이 현장 답사를 해야 하는데, 《난중일기》에 나오는 해당 유적지와 지번이 거의 대부분 변경된 것을 바르게 추적하여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기까지에는 험난한 여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이 정유년 4월 1일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의금부에서 나온 뒤 120일 간의 여정을 기준으로 백의종군로를 탐방하려면 경기, 충청, 전라, 경상지역 순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순신이 초반에 경유한 과천 인덕원과 독산성, 수탄(水灘), 평택현(현 팽성현)의 이낸손의 집부근이 있는 경기지역을 실사했는데, 해당 유적지에 대한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작부터 어려움이 따랐다. 그후 몇 차례의 실사와 고증으로 추정지를 비정할 수 있었지만, 거의 새롭게 고증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일례를 미루어 볼 때 충청권은 물론 전라와 경상지역에 있는 이순신의 백의종군로가 과연 정확하게 고증된 것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것으로 보면, 현지 사정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보고 위치를 비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간혹 이순신의 유적지 방문자가 문헌과 조사내용이 현지 사정과 달라 혼란을 겪는다면 ‘이순신의 전국 백의종군 역사길’이라는 신성한 의미에 누가 될까 심히 염려가 된다.

      글 : 노승석(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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