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獨思)의 의미

   인간사회에서 경험지식이란 예기치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필요하다. 여기서 경험이란 삶에 도움이 될 정도의 체험수준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사의 경험지식은 항상 삶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중국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명신 소광(疏廣)은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智].”고 하였다. 이는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상에서의 경험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전란 속에서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다. 그는 전쟁을 준비하는 진중(陣中)의 공간에서 그것도 남들이 모두 휴식하며 잠든 어둔 밤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사색하며 산가지를 뽑아 앞날을 내다보듯이 암울한 현실을 걱정하고 미래를 계획했다. 이러한 불철주야의 노력이 쌓인 결과 하나의 경험지식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늘 대한 촛불의 의미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저녁에 보성군수가 들어왔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 2경(오후 10시경) 소나기가 크게 내렸는데, 빗발이 삼대 같아서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교감완역 난중일기》갑오, 7월 6일-

위 예문처럼 《난중일기》에는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다.[明燭獨坐]”라는 글이 자주 보인다. 여기서 “홀로 앉았다”는 표현은 전쟁 중 고독과 번민이 연속되는 상황임을 짐작케 한다.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홀로 사색하며 때로는 황폐한 나라를 걱정하고 때로는 늙으신 노모를 생각하면서 긴긴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러한 생활을 무려 7년간 했다는 것은 인격 수양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순신은 정유년 10월 어느 날 저녁의 기운이 봄처럼 따뜻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서 비가 내릴 징후가 많았는데, 이때 달빛이 흰 비단처럼 유난히 밝게 비추자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아 온갖 생각을 떠올렸다. 이처럼 자연현상에 매료되어 깊은 사색을 할 때에는 항상 혼자 있었다. 이러한 혼자만의 경지에서 남이 생각할 수 없는 지혜를 자아냄으로써 끝내 탁월한 전략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유학(儒學)의 수양단계에서 최고의 경지라고 하는 신독(愼獨)이다.

  이순신의 사색은 최고 수양단계에서 터득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통사람의 사색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의 사색의 이면에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생각이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저녁 내내 홀로 누대 위에 앉아 있으니, 품은 생각이 만갈래였다. 동국의 역사를 읽어보니 개탄스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교감완역 난중일기》 병신년 5월 25일-

   이순신에게 있어서 사색이란, 홀로 생각한다는 “독사(獨思)”로서 지혜발견을 위한 한 개인의 사색이자 국난극복을 위한 우국충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깊은 사색은 주로 혼자만의 경지에서 정제하고 절제하는 수양을 거쳐야 가능한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의미가 담긴 이순신의 서재인 독사재(獨思齋)가 현충사 경내에 설치되었다. 이곳을 방문하여 봄꽃이 만개한 이순신의 유적지에서 꽃향기와 함께 독특한 사색을 느껴보는 것도 봄날의 운사(韻事)로서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 : 노승석(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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