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례가 정확한 해독의 근거

  필자는 지금까지 새로운 난중일기 35일치를 찾아내었고, 최초 한글번역본인 홍기문의 난중일기와 삼국지 인용문,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임진기록》에서 명나라 담종인의 금토패문 전문 등을 찾아 처음 소개했다. 특히 금토패문은 5년 전에 필자가 완역한 선조의 교서집에 들어 있는 <천조선유도사부담위선유사(天朝宣諭都司府譚爲宣諭事>라는 글과 같은 것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점에서 세간에는 이순신의 연구와 관련하여 하나의 발굴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평가가 있다. 이렇다보니 필자는 이순신 관련한 신자료 제보를 많이 받는 편인데, 편지글, 영정, 문서류 등 다양하다. 이순신 인물에 대한 평가문제, 이설과 정론 등에 관한 질문내용들도 많다. 여기서는 그동안 가장 질문이 많았던 《난중일기》병신년 9월 14일자의 “여진공(女眞共, 여진과 함께 했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 부분이 논란이 된 주요한 요인은 무엇보다 글씨해독의 문제이다. 이 여진공의 함께 공(共)자는 필자가 2005년 일본인이 오독한 “스물 입(卄)”, “서른 삽(卅)”자를 바로잡은 것이다. 원본의 글자 형태를 보면 매우 모호하게 작성되어 있어서 얼핏보면 입(卄)자나 삽(卅)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대로 해독하면 말이 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해 많은 고전 및 초서 전문가들이 오독이라는데 한 목소리를 내었다. 초서해독의 방법에는 설사 글자 형태가 맞을지라도 문맥에 맞지 않으면 정확한 해독으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초서연구계에 통용되는 규칙이다.

  요컨대 입(卄)자와 삽(卅)를 공(共)자로 볼 수 있는 중요한 해답이 바로 《난중일기》안에 들어 있다. 즉, 실제 20을 뜻하는 “입일(卄日)”[갑오년 3월 20일]의 입자와 30을 뜻하는 “삽척(卅隻)”[갑오년 3월 3일]의 삽자가 공(共)자와 분명히 다르고, 인명 뒤에 적은 공(共)자들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난중일기》전체 내용 중에는 공(共)자가 모두 72회 나온다. 이는 주로 부사어로 쓰였는데, “함께 이야기하다[共談]”, “함께 먹다[共啖]” 등의 내용이다. 여기서 공(共)은 중국어로 yiqi[一起], 영어로 “with”, 즉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순신은 인칭 뒤에 동사를 쓰면서 바로 그 뒤에 이 공(共)자를 보어(補語)로 자주 사용했다.

○ 장흥부사와 녹도만호가 와서 함께 했다[長興鹿島來共]<갑오 8월 13일>
○ 충청수사가 술을 내오기에 우수사와 두 조방장이 와서 함께 했다[忠淸水使進酒, 故右水使․兩助防將來共]<을미 9월 6일>
○ 활 15순을 쏘고 경상수사도 와서 함께 했다[射帿十五巡. 慶尙水使亦來共]<병신 6월 24일>

위의 예문을 봐도 공(共)자는 어떤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共)자 앞에 여자 이름이 오면 의미가 달라지는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에 오해가 될만한 어떤 의미도 더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밝혀둔 적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고전 및 초서전문가들도 이 “여진공(女眞共)”의 공(共)자를 처음 대할 때는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 그러나 위의 제시한 공(共)자의 용례를 보고난 후에는 모두 공감하였다. 초서해독이란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고 문리력이 없으면 오독하기 쉬운 영역이다. 이순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평가하는 데는 없는 말을 함부로 지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인물가치를 높이기 위해 있는 사실을 없애가면서 해독해서도 안될 것이다. 최근에는 이 공(共)자에 대해 오랫동안 고전과 초서를 연구해온 원로 학자분들 다수가 모두 인정했다. 이것으로 더 이상의 의문이 없을 것이며 일본인이 오독한 글자를 다시 인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핵심어 : 발굴의 역사, 용례, 공(共)자, 원로학자, 일본인의 오독

 

    글 : 노승석 여해(汝諧) 고전연구소 대표(고전 및 초서전문가, 이순신연구가)
         역서 -《난중일기유적편》(여해, 2019)
                 《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2019)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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