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창의적 노력

  국내의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중반 홍기문이 최초의 한글판 《난중일기》를 포함한  《이순신의 전집》을 간행한 이후부터 노산 이은상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19세기 후반의 일본인 장교 시바야마 나오노리(柴山尙則)와 20세기 초반의 일본인 아요야 나기 난메이(靑柳南冥) 등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일본어로 되어 있는 한계가 있다. 국내의 20세기 초기 연구자로서 장도빈, 설의식 등도 있지만 연구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이러한 선행 연구를 말할 때는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보통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내면 최초나 발굴, 발견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만약 연구의 선후관계에서 선행 연구가 있는데도 나중의 연구 성과에 최초 발굴, 발견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는 오직 유일한 창작성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고, 이미 알려진 내용에는 사용하지 않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이는 모든 연구자들이 따르고 있는 관행이다.

   6, 25전쟁 이후 1960년대는 황폐한 국내상황을 극복해야하는 도약의 시대로서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물론 이순신의 정신이 새로운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다보니 연구내용의 정확성보다는 이순신정신의 보급과 대중화가 우선이었다. 그후 20세기 말 이순신의 문집인 《이충무공전서》가 한글로 완역되기까지 이은상이 교감(校勘)을 최초 시도하는 등 이순신연구에 노고가 지대했다.

  21세기에는 디지털정보 정착을 위해 고전적류의 DB화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이순신연구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여러 선행연구자들에 의해 《이충무공전서》와 《난중일기》에 대한 판본연구 및 번역 교감이 시도되었고, 마침내 2010년 방대한 DB 및 고전문헌 정보로 인해 《난중일기》를 정본화한 필자의 《난중일기》교감완역본이 탄생하게 되었다. 2013년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고 2014년 명량 영화가 상영되면서 이순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순신이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고 영화매체가 이순신의 정신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면서 이순신열풍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는 이순신의 주요 전적지들이 잘 정비되었고, 탐방로까지 만들어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상시 방문하여 역사의 현장 속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배우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전술, 리더십 등 다양한 주제들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이순신에 깊이 빠져든 일반인들도 너도 나도 이순신관련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많이 인용하는데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이 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데 21세기 정보화시대에 한 개인의 연구 내용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용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그것이 후대에 이순신의 정신을 알리는데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양서(良書)를 만드는 데는 타인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주가 되어서는 결코 안되고 반드시 창의적인 내용도 있어야 한다. 한 인문학 전문학자는 “최근까지 나온 이순신관련 책들의 내용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는 비판을 한 적이 있다. 최초 발굴이란 말을 할 만한 창작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신자료를 발굴하는 일은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하다. 이순신연구에도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올바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진정으로 태평한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데, 그때가 되면 혹여 어디에 있을 지도 모를 이순신의 가장 오래된 초상화도 출현할 것이다.

  핵심어 : 최초 발굴, 연구업적, 난중일기교감, 창의적 노력

 

글 : 노승석 여해(汝諧) 고전연구소 대표(고전 및 초서전문가, 이순신연구가)
      역서 -《난중일기유적편》,《교감완역 난중일기》(여해, 2019)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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